사랑과 파격으로 첫 문을 열었다…서울시발레단 '한여름 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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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발레단 창단공연 <한여름 밤의 꿈>
시간을 관통하는 주제로 이 시대의 춤을 이야기하다
시간을 관통하는 주제로 이 시대의 춤을 이야기하다

사랑이야말로 모두의 빗장을 열고 결계를 풀어낼 가장 강력한 마법이자, 시대를 관통하는 묘약이 아니겠는가. 서울시발레단은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을 모티브로 관객에게 ‘사랑의 묘약’을 뿌렸다.
묘약의 방향은 새로운 움직임에 대한 실험보다는 환상적인 연출로 향했다. <한여름 밤의 꿈>은 창단 공연이라는 의미와 컨템퍼러리발레단이라는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의지를 시선을 사로잡는 미장센으로 드러냈다. 1막의 쏟아지는 빗줄기와 거대한 백색 날개, 2막의 사랑과 심장을 상징하는 붉은 나무, 사랑에 대한 회상을 담은 긴 회랑과 계단, 우리가 사랑에 대해 품고 있는 판타지는 환상적인 연출로 어른거린다.

퍽의 이미지를 통해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고자 한 안무가의 의도가 읽히기도 한다. 1부에서 요정 퍽의 고뇌는 2부의 붉은 색 옷을 입은 무용수, 상처(broken heart)로 이어진다. 이 둘은 각각 1부와 2부의 장면들을 이끌고 연결하는 중심축이 된다.



수많은 뜨거운 사랑, 외로운 사랑, 삼각관계, 이성과 동성의 사랑, 이 시대의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다루지만 결국 2막의 말미에 등장하는 독무를 통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안무가는 욕심껏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이 작품 안에 쓸어 담았다.

영상 안에 거대하게 잡힌 몸은 꿈틀거리는 욕망의 표현이자 은밀하게 내면에 감춰둔 자신의 민낯, 동시에 고전에서 정해놓은 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의지와 도전의 몸짓이었다. ‘욕망’이라는 단어 안에는 솔직함과 어디로 향할지 자신의 방향성, 그리고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

20세기 말, 춤의 작가주의가 태동한 이후 철학과 사상을 무용작품 안에 담는 것은 새로운 움직임을 담는 것을 넘어설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연출의 힘이 안무를 완성하기도 한다.
<한여름 밤의 꿈>은 이 모든 것을 담아 화려한 서막의 테이프를 끊었다. 그 서막이 이 ‘동시대의 춤’이라는 이름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이어갈까. 사랑만큼이나 서울시발레단이 보여줄 ‘묘약’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기를 기대하게 되는 여름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