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화재로 7명이 사망한 경기 부천 호텔의 객실 내부 모습. / 사진=연합뉴스
지난 22일 화재로 7명이 사망한 경기 부천 호텔의 객실 내부 모습. / 사진=연합뉴스
투숙객 7명이 사망한 경기 부천의 한 호텔 화재에서 침대 매트리스가 처음 불이 날 당시 불쏘시개 역할을 했을 것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25일 소방 당국에 따르면 지난 22일 부천 호텔 화재 당시 발화지점인 810호(7층) 객실에서 처음 연기가 복도 쪽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한 시각은 오후 7시 37분께다. 애초 810호에 배정받은 투숙객 A씨가 방에서 나온 지 2분가량 지난 뒤였다.

A씨는 810호에 들어갔다가 에어컨 쪽에서 '탁탁'하는 소리와 함께 탄 냄새가 나자 호텔 직원에게 객실 변경을 요청한 뒤 아래 6층으로 방을 바꿨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810호 출입문은 복도 쪽으로 열린 채 있었다. 해당 객실에서 시작된 뿌연 연기가 이 문을 통해 1분23초만에 호텔 7층 복도를 가득 채우면서 다른 투숙객들은 1층으로 신속하게 대피할 수 없었다.

당시 상황은 소방 당국이 확보한 호텔 7층 폐쇄회로(CC)TV에 그대로 담겼다. 소방 당국은 A씨가 화재 발생 전 810호에서 처음 목격한 상황을 토대로 에어컨 누전으로 인해 불이 난 것으로 추정했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에어컨에서 불똥이 떨어져 소파와 침대에 옮겨붙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에어컨 화재는 장시간 가동으로 인한 과부하나 낡은 전선에 먼지 등 이물질이 끼었을 때 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810호 에어컨은 벽걸이형으로 그 아래에는 소파가 있었고, 바로 옆에 침대 매트리스가 놓여 있었다

따라서 매트리스가 불이 붙으면 실내 전체가 폭발적 화염에 휩싸이는 이른바 '플래시 오버' 현상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단 지적이 나온다.

과거 한국방재학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침대 매트리스는 TV보다 불이 커지는 속도(화재 성장률)가 490배 빠른 것으로 파악됐다. 흔히 불에 잘 탄다고 알려진 나무 재질의 책상보다 230배, 서랍장보다도 9배나 화재 성장률이 빠르다.
23일 오전 전날 화재가 발생한 경기 부천시의 한 호텔 일대에 폴리스 라인이 설치돼 있다. / 사진=연합뉴스
23일 오전 전날 화재가 발생한 경기 부천시의 한 호텔 일대에 폴리스 라인이 설치돼 있다. / 사진=연합뉴스
810호 객실에서 에어컨 불똥이 처음 튄 소파 역시 매트리스보다는 화재 성장률이 절반 수준으로 낮지만, 다른 집기류에 비해서는 한번 불이 붙으면 확산 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이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불이 난 810호 객실이 침대가 없는 온돌방이었다면 에어컨에서 불이 처음 붙었어도 누군가가 발견해 소화기로 끌 수 있을 정도의 화재로 끝났을 것"이라며 "에어컨 주변에 있던 침대 매트리스가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화학제품인 매트리스는 불에 타면 나무 재질의 가구보다 유독가스가 훨씬 많이 나온다"며 "숙박업소의 매트리스는 방염 성능 기준을 적용해 난연 제품을 쓰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 감식 결과 등을 토대로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소방 당국자는 "810호 에어컨에서 스파크가 튀어 맨바닥에 떨어졌다면 그나마 연소나 연기 확산 속도가 이 정도로 빠르진 않았을 것"이라며 "하필이면 소파와 매트리스가 에어컨 근처에 있어 불이 빨리 붙은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