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마르크스 경제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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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수요 없어 폐지되는
서울대 마르크스 강좌
탄생 당시부터 '낡은 이론'
배우는 것은 기회비용 커
'종말론적 종교' 미련 버리고
황폐해진 지적 풍토 개선해야
복거일 사회평론가·소설가
서울대 마르크스 강좌
탄생 당시부터 '낡은 이론'
배우는 것은 기회비용 커
'종말론적 종교' 미련 버리고
황폐해진 지적 풍토 개선해야
복거일 사회평론가·소설가
![[다산칼럼] 마르크스 경제학 강좌](https://img.hankyung.com/photo/202408/07.32276634.1.jpg)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은 애덤 스미스에서 연유했다. 스미스는 경제적 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정책들을 추천했다. 그는 그런 정책들이 조화를 이루어 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불러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비유로 설명했다.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을 담은 저작이 완간되었을 때는 이미 레옹 발라가 ‘일반균형이론’을 발표한 터였다. 발라의 이론은 경제 체제가 가격 기구 작동을 통해 균형을 이루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모습을 잘 그렸다. 워낙 뛰어나고 웅장한 이론이었으므로 조지프 슘페터는 그것을 ‘경제 이론의 대헌장’이라고 불렀다. 그 뒤로 주류 경제학은 발라가 낸 길을 따라 발전했다.
즉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은 세상에 나왔을 때 이미 낡은 이론이었다. 따라서 그의 이론을 학부에서 가르치는 것은 적절치 않았다. 학부에서 배워야 할 지식은 그 분야의 정설들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사정을 감안해 경제학사 강좌에서 서너 시간 비판적으로 가르칠 수는 있다. 마르크스 이념에 대한 면역력을 길러준다는 뜻에서 마르크스의 비논리적이거나 독선적인 주장들을 상세히 가르칠 수도 있다. 그러나 학부에서 독자적 강좌를 개설한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온당치 못했다.
불행하게도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마음에 자리 잡은 마르크스주의의 이념적 틀을 대신할 지적 모형을 혼자 찾아내는 것은 보통 사람에겐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마르크스는 인류 사회가 원시 사회에서 공산주의 사회로 단계적으로 이행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종말론’(eschatology)은 인류 역사의 방향과 목적지를 제시해 추종자들에게 확신과 안정을 준다. 많은 학자가 지적한 것처럼 마르크스주의는 본질적으로 종교 체계다. 그리고 종교의 핵심은 종말론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지금까지 나온 종교들 가운데 가장 매혹적인 종말론을 제시했다. 바로 그 점이 마르크스주의가 그리도 큰 영향력을 지닐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비결이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마르크스 이론에서 어렵사리 벗어난 사람들도 선뜻 시장을 믿지 못한다. 방향도 목적지도 모른 채 끊임없는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이 가장 나은 결과를 낳으리라고 믿으려면, 상당한 지적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제 진화론은 ‘보편적 다윈주의’(Universal Darwinism)의 모습으로 모든 학문의 기본 이론이 되었다. 생물과학뿐만 아니라 물리과학도 진화를 가장 근본적 이론으로 삼는다. 이해하기 가장 어렵다는 양자물리학에서도 진화는 이론적 토대의 한 부분이 되었다. 대학 교과과정을 짤 때 진화를 다루는 강좌들을 마련하는 일은 지난 한 세대 동안 마르크스주의로 황폐해진 우리 지적 풍토를 개선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