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아들 고이즈미의 부상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82)는 일본에서 존경받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2001년 집권하자마자 성역 없는 개혁으로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1호 개혁 대상으로 우정공사를 꼽아 민영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정경관 유착의 고리를 끊고자 애썼다. 가장 큰 업적은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의 후생연금(국민연금) 개혁으로 고갈 시점을 100년 늦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한국인에겐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 일본 정부가 방위백서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처음 명시한 것과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일방 선포한 것 모두 2005년으로 고이즈미 재임 때였다. 교과서 갈등이 커졌는데도 재임 5년 내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비난을 샀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자신의 지역구인 가나가와현 11구를 둘째 아들 신지로(43)에게 물려줬다. 아들 고이즈미는 28세에 하원 격인 중의원에 처음 당선됐으며 이후 내리 5선에 성공했다. 30대에 환경상과 내각부 특명담당 장관을 지냈다.

그는 환경상 재임 시절 한 국제회의에 참석해 “기후변화는 펀(fun)하고 쿨(cool)하고 섹시(sexy)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연설한 후, 기자들이 설명을 요청하자 “설명하는 것 자체가 섹시하지 않다”고 답해 ‘동문서답의 대가’ ‘펀쿨섹좌’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또 독도가 해양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다케시마를 절대 사수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아들 고이즈미가 요즘 총리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다음달 27일 사실상 차기 총리인 자민당 총재 선출이 예정돼 있는데 여론조사 선호도 1위를 달리고 있어서다. 정치 파벌의 비자금 이슈가 스캔들로 번지고 이로 인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불출마하자 무파벌을 선언한 젊은 고이즈미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 총리는 한국에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다. 한·일 관계가 과거 갈등 국면에서 최근 미래를 위한 협력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만약 아들 고이즈미가 총리가 된다면 ‘다케시마 절대 사수’를 계속 외쳐선 곤란하다.

박준동 논설위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