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KBS에 출연해 “집값을 잡기 위해 은행에 더 세게 개입하겠다”고 공언했다. 무분별한 대출 경쟁으로 부동산시장에 불을 지폈다며 은행을 질책한 발언이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집값 과열의 원인은 은행의 탐욕이 아니라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통화·대출 정책 탓이기 때문이다.

수도권 중심의 부동산시장 불안은 기본적으로 시중통화 확대의 산물이다. 연초 대통령이 ‘상생금융’을 강조한 게 출발이었다. 금융당국이 ‘서민 이자부담 경감’을 앞세워 은행권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면서 가계대출이 급증했다. 여기에 디딤돌·버팀목·신생아특례대출 등 정책금융 확대가 가세하자 ‘저금리 갈아타기 열풍’이 불며 집값에 불이 붙었다. 7월로 예정된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도입을 연기하며 투기심리를 자극한 것도 금융당국이다.

정부의 금융 정책 전반이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시장 혼선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지난주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동결하자 당정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게 대표적이다. 집값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고금리에 고통받는 경제주체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실까지 나서 비판적 입장을 보인 것은 부동산시장 참여자들에게 그릇된 신호를 보낸다는 지적도 많다.

오락가락하기는 금융당국도 마찬가지다. 이 원장은 두 달 전 “무리한 대출 확대는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라며 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상을 유도했다. 이후 5대 시중은행은 20차례 넘게 주담대 금리를 올렸다. 그 결과 1금융권 금리가 2금융권(보험사)보다 0.5~1.0%포인트 높아지는 초유의 ‘금리 역전’ 현상까지 벌어졌다. 관치로 은행을 굴복시켜 시장을 왜곡한 당사자가 ‘그동안 최대한 자율을 보장했지만 앞으로는 어림없다’는 식이니 어리둥절하다.

한은의 통화정책마저 딜레마에 빠뜨리고 만 부동산시장을 어떻게든 안정시켜야 한다는 대의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정교한 설계와 신중한 접근이 필수다. 냉·온탕을 오가는 엇박자 ‘정치 금융’으로는 결코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상급기관인 금융위를 제쳐놓고 설익은 발언을 불쑥불쑥 던지는 금감원장의 모습도 아슬아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