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61개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와 의료기사 등이 오는 29일 파업을 예고했다. 임금협상 등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가 없으면 환자 곁을 떠나겠다는 것이다. 집단사직한 전공의 공백을 메우던 간호사와 의료기사까지 파업에 나서면 극심한 의료대란이 빚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간호사·의료기사 등도 파업 예고

응급실 '셧다운' 위기인데…간호사마저 병원 떠나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소속 사업장 중 29일 파업을 예고한 병원은 61곳이다. 환자가 집중되는 ‘빅5’ 병원은 빠졌지만 중증 환자 진료를 책임지는 대형 대학병원이 대거 포함됐다. 고려대의료원과 이화의료원, 중앙대의료원, 한양대의료원 등이 파업을 예고했다. 한림대의료원과 강동경희대병원, 노원·대전을지대병원도 마찬가지다. 공공병원 중엔 국립중앙의료원, 한국원자력의학원 등이 포함됐다.

보건의료노조는 간호사 의료기사 등이 주로 활동한다. 앞서 61개 병원, 2만9705명을 대상으로 파업 찬반 투표를 했다. 소속 조합원 81.7%(2만4257명)가 참여해 91.1%(2만2101명)가 찬성표를 던졌다. 추가 찬반 투표도 하고 있어 파업 예고 병원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진료 정상화, 인력 확충, 주 4일제 시범사업 도입, 임금 6.4% 인상 등을 파업 철회 조건으로 제시했다. 사실상 임금협상이 핵심 안건이다. 전공의 집단사직 후 국내 의료기관 대다수가 재정적자를 호소하고 있어 상당수 병원에서 협상 타결보다는 파업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응급의료 공백 이어져

보건의료노조 파업은 연례행사다. 매년 일부 병원에서 파업이 있었지만 의료 시스템이 무너질 정도로 큰 영향을 주진 않았다. 의사들은 현장을 지킨 데다 주변 다른 병원들이 공백을 메웠기 때문이다.

올해는 다르다. 대학병원 전공의 90%가량이 빠져나간 뒤 극심한 인력난이 계속되고 있다. 간호사와 의료기사들은 이들의 빈 자리를 채우고 있다. 노조 측은 파업해도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등엔 필수인력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입원병동이나 영상촬영실 등에서 추가 인력이 빠져나가면 암 환자나 입원 환자 진료 차질이 커질 수 있다.

‘폭풍 전야’인 응급실 상황도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조 파업에 대비하기 위해 입원실 가동을 줄이면 연쇄 영향을 받아서다. 전공의 집단사직 후 국내 응급실 상당수는 축소 운영되고 있다. 응급의학과 의사 콜을 받아 후속 진료할 과별 당직 의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서울 14개 대형 대학병원의 86%인 12곳이 응급실에서 안과 시술 환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25일 기준). 성형외과 의사가 없으니 이마가 찢어진 환자를 보내지 말라고 알린 병원은 10곳에 이른다. 건국대병원 경희대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중앙대병원 한양대병원 등은 휴일·야간에 아이들 진료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부 대응력 역부족” 비판도

전공의 이탈 후 병원에 남은 간호사와 의료기사 등은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해왔다. 경영난 탓에 떠밀리듯 무급휴직한 직원도 많다. 일각에선 이들이 노동자로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의사 집단행동을 두고 ‘돈보다 생명을’ 구호를 외치며 비판하던 보건의료노조가 결국 임금 때문에 생명을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위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병원 내 의사와 타 직종 간 갈등은 더 심화할 것이란 평가다.

정부는 대응에 나섰다. 25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주재로 의사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를 연 뒤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진료 차질 의료기관을 안내하겠다”고 했다. 간호사법 제정을 적극 추진하고 파업 미참여 공공의료기관은 비상진료를 시행한다. 의료계 관계자는 “공공병원 비상진료는 전공의 집단사직 후 이미 가동한 상태”라며 “모니터링 강화만으론 의료 공백을 막기엔 역부족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