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이 지난 25일 비교적 대규모 공격을 주고받았다. 지난달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푸아드 슈크르 헤즈볼라 사령관이 사망한 후 최대 규모인 320여발의 로켓과 드론을 동원했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지난주 '잭슨홀 미팅' 연설에서 다음 달 금리 인하에 쐐기를 박으며 경기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 가운데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감이 커지면서 기름값은 오를 일만 남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면전이 벌어지고, 이 틈에 복수의 칼을 갈던 이란이 이스라엘의 뒤를 친다면 원유 가격은 배럴당 150달러를 향해 달릴 전망이다.

레바논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연설을 하는 모습이 헤즈볼라의 알 마나르 TV에서 방영됐다. 
사진=AFP PHOTO / HO / AL-MANAR
레바논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연설을 하는 모습이 헤즈볼라의 알 마나르 TV에서 방영됐다. 사진=AFP PHOTO / HO / AL-MANAR



















그러나 원유 시장의 충격이 비교적 작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분쟁이 확대되지 않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반론이다. 이스라엘이 어지간한 피해를 보지 않는 한 이스라엘의 메르카바 전차부대가 레바논 국경을 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리고 미국의 경기는 여전히 불안하며 최대 석유 소비국인 중국의 상황도 좋지 않다. 게다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의 카르텔이 감산 폭을 줄이겠다고 밝힌 10월이 다가오고 있어 석유 공급은 늘어날 전망이다.

이스라엘 지상군의 레바논 침공 쉽지 않다

25일 외신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이번 공격은 지난달 헤즈볼라 사령관 푸아드 슈크르가 암살된 것에 대한 보복 공격 첫 단계"라고 밝혔다. 헤즈볼라 측은 완전한 복수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헤즈볼라의 추가 공격이 예상되지만, 시점은 예상할 수 없다.

공격의 형태는 로켓 공격과 폭탄 등을 이용한 테러 정도에 그칠 전망이다. 15만~20만 발의 로켓과 탄도 미사일을 보유하고, 고급 장비로 무장한 특수부대도 거느린 헤즈볼라지만 이스라엘을 침공할 능력은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 게릴라군에 가까운 헤즈볼라가 정규군인 이스라엘 육군과 정면으로 승부하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깝다.

반대로 이스라엘 지상군이 지금 헤즈볼라를 치러 레바논을 침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관측이 우세하다. 이스라엘군은 지금도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와 싸우느라 바쁘다. 하마스를 상대로 10개월 가까이 전시 상태를 유지하느라 이스라엘의 재정적, 심리적 여력도 충분하지 않다. 레바논 국경 4.8㎞ 이내 주민 6만여명이 대피 명령으로 이재민이 됐다.



레바논 영토에서 헤즈볼라를 상대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처럼 끝없는 전쟁에 말려들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의 세종시 면적보다 작은 가자지구 장악과 비교하면 레바논을 공격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스라엘군은 2006년 헤즈볼라가 국경 순찰 중이던 이스라엘 병사 8명을 죽이고 2명을 납치하자 레바논을 전면 침공했다. 그러나 헤즈볼라가 민간인을 방패 삼아 지하 시설을 이용해 게릴라전으로 맞선 탓에 민간인과 군 사상자가 급속히 불어났다. 국제사회 비난의 목소리도 높아지자 결국 34일 만에 레바논에서 철수했다. 아모스 하렐 이스라엘 하레츠 국방 연구원은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전면전이 벌어지면 헤즈볼라는 이란의 지원을 받아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 붕괴를 노리고 소모전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동안 이스라엘 텔아비브와 하이파 등 국토 전체가 지속적인 미사일과 로켓 공격에 노출된다"고 우려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문제를 마무리 짓는 게 급선무다. 그래야 예멘 후티 반군 등 다른 이슬람 무장단체들을 진정시킬 수 있고, 헤즈볼라와 이란에 집중할 수 있다. 다만 미국·유럽연합(EU)과 아랍 각국은 즉시 휴전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그럴 마음이 없다. 작년 10월 공격을 주도했고 이번에 하마스 지도자로 선출된 야히아 신와르를 찾느라 혈안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24일 데이르 엘 발라 시 남동쪽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 사진=AFP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24일 데이르 엘 발라 시 남동쪽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 사진=AFP

하강 곡선 그리는 미국 제조업과 헤메는 중국

유가 급등 가능성이 낮은 또 다른 이유는 원유 수요 전망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증시는 상승세지만 제조업 경기가 불안한 탓이다. 배리 아이컨그린 미국 UC버클리 교수는 지난 22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증시가 곧 경제는 아니다"라며 "소비자의 자신감이 더 중요한데 현재 글로벌 경제는 완만한 둔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최근 발표된 S&P글로벌의 구매관리지수(PMI) 조사에서 미국의 8월 서비스업 지수가 55.2를 기록하며 확장세(50 이상)를 이어갔지만, 제조업 PMI는 전달(49.6)보다 낮아진 48.0에 그치며 8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S&P글로벌은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로 인한 불확실성과 미래 수요에 대한 우려로 인해 투자 심리가 계속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지난 16일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지난 7월 16~24살 청년 실업률이 17.1%에 달한다. 이는 전달 13.2%보다 3.9%포인트 높아진 수준이며, 실제 실업률은 이보다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동산 가격 하락도 계속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5월 외곽의 신규 주택 분양가 18% 인하를 허용한 베이징시를 시작으로 최근 주요 도시 정부가 가격 규제를 포기하고 있다. 당초 집값 급등을 막기 위해 도입된 규제지만, 최근엔 폭락을 방어하고 있었다. 크리스티 헝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분석가는 "이번 조치로 대부분 도시의 주택 가격이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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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의 점진적 감산 철회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OPEC+ 카르텔 국가들이 10월부터 감산을 단계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고 한 것도 변수다. 미국, 캐나다, 브라질, 가이아나 등 비(非)OPEC 경쟁국들이 생산량을 늘리는 가운데 감산을 완화하면 유가가 급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OPEC+은 △2022년 10월 합의에 따라 모든 OPEC+ 회원국이 참여하는 하루 총 200만 배럴 감산, △2023년 4월 사우디와 러시아 등의 166만 배럴 추가 자발적 감산, △2024년 1월부터 시작된 220만 배럴의 자발적 감산 등 세 차례에 걸쳐 생산량을 축소했다.

이번 OPEC 회의에서 감산 완화를 예정대로 시행하기로 한다면 오는 10월부터 OPEC+는 매달 일일 18만배럴 씩, 2025년 1~9월엔 매달 일일 21만 배럴씩 감산을 완화(증산)할 전망이다. 최근 브렌트유가 선물 시장이 백워데이션(선물보다 현물 가격이 비싼 가격 역전 상태) 상황인 것도 이 같은 전망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와 기업은 유가 하락을 기대하고 재고를 줄였고, 헤지펀드들의 원유 옵션 상품에 대한 투자도 감소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선진국들의 상업적 원유 및 정제 석유 제품 재고는 6월 말 현재 27억6100만 배럴로 최근 10년간 계절 평균보다 4% 이상 적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