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 리에 / 사진. ©SHINCHOSHA
구단 리에 / 사진. ©SHINCHOSHA
가까운 미래의 일본 도쿄. 범죄자들을 위한 교도소 빌딩이 도시 한복판에 최첨단으로 호화롭게 지어진다. 이곳에서 범죄자는 비난이 아니라 안쓰러운 시선을 받는다.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이유에서다. '최초의 피해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들을 위한 교도소의 이름은 '심퍼시 타워 도쿄' 즉, '도쿄도 동정탑'으로 지어진다.

이같은 줄거리를 가진 소설 <도쿄도 동정탑>을 쓴 구단 리에 작가는 2024년 일본 신진 소설가에게 주어지는 최고 권위 상 중 하나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수상 당시 소설에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가 만든 문장이 사용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최근 국내 번역본을 출간한 구단 리에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일각에선 구단 리에가 아쿠타가와상을 받자 AI를 활용한 창작물이 상을 받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구단 리에는 수상 직후 "다른 수상 후보들에게 실례가 아닌가"라는 익명의 메시지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작품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기술이라면 예술가로서 어떤 것이든 시도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구단 리에는 집필 과정에서 생성형 AI를 취재 대상으로 활용했다. 가령 "교도소를 현대적 가치관에 기반해 업데이트하고 싶은데 어떤 명칭이 좋을까?" 등의 질문을 AI에게 던지는 식이다. 구단 리에는 "순식간에 그럴듯한 답을 내놓는 AI의 성능에 감탄했다"며 "일 년쯤 시간이 흐른 뒤 같은 질문을 다시 던져봤는데,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는 점도 놀라웠지만 그 진화의 속도가 더 대단했다"고 말했다.

다만 AI는 인간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게 구단 리에의 생각이다. 그의 소설 속엔 주인공 '마키나'가 AI가 세상의 지식을 끌어모아 만들어내는 문장에 대해 '영혼이 없다'고 비판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는 "AI는 무난한 대답을 내놓는 데 능숙한 도구일 뿐, 도구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인간에 달려있다"며 "창작의 영역에서도 예술의 영향력은 기술이 가져오는 게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사람이 가져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日의 신예 작가 리에 "AI 도움 받아도 결정은 우리 몫 아닌가"
이번 소설엔 'PC(정치적 올바름)' 추구에 대한 풍자도 담겨 있다. 소설 속 범죄자를 위한 새 교도소인 '도쿄도 동정탑'은 교도소란 표현이 차별적이란 이유에서 찾은 대안적 명칭이다. 소설 속에선 교도관이란 명칭을 차별적이지 않은 단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도 나온다.

구단 리에는 "소설가 데뷔 후 문예지에 작품을 게재할 때 교열 담당자로부터 PC를 의식한 수정 요구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누구도 타인의 마음을 조작할 수 없듯, 마음과 밀접히 관계된 언어를 타인이 제한할 권리 역시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물론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세심하게 말을 고르는 배려는 필요하다"면서도 "부적절한 발언을 듣고 반사적으로 모든 것을 부정하기보단, 어떤 의도와 배경에서 나온 말인지 상상해보는 냉정함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 시와 드라마, 영화 등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구단 리에는 "편집자가 오규원 시인의 시를 소개해준 것을 계기로 한국 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드라마 '대장금'은 세 번쯤 반복해서 봤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도 좋아한다.

구단 리에는 "독자들이 이번 작품에 쓰인 내용이 허구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독서 경험을 하길 바란다"며 "앞으로 스스로 놀랄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