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70분짜리 이 곡 하나면 공연은 충분합니다."

고전음악부터 현대음악까지 아우르는 지휘자 최수열(45)이 이번에는 리스트 '파우스트 교향곡'에 도전한다. 내달 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 '클래식 레볼루션'에서다. 연주에는 한경아르떼필하모닉과 고음악 전문 합창단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이 참여한다.
최수열 인터뷰 사진. 롯데문화재단
최수열 인터뷰 사진. 롯데문화재단
프로그램 구성이 대담하다. 서곡이나 협주곡 없이 파우스트 교향곡 단일 작품으로만 공연한다. 최근 국내에서 이 곡이 연주된 건 2015년. 지휘자 임헌정과 국립심포니의 연주 이후로 9년 만이다. 흔히 연주되지 않는 작품인데다, 규모가 큰 작품인 만큼 최수열의 포부 또한 남달랐다. 최근 <아르떼>와 만난 그는 "(파우스트는) 졸작이라 자주 연주되지 않는 게 아니라 연주가 까다롭고 노력과 품에 비해 가성비가 좋지 않아서 덜 연주된 것"이라고 운을 뗐다.

"1시간 넘는 길이에 오르간, 테너 솔리스트, 합창단까지 나와요. 이 정도 노력과 품이 든다면 차라리 말러를 하는 게 모객이 더 잘 될 거예요. 그런데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고 제가 잘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앞으로 재연되게끔 하는 게 목표예요."
리스트 파우스트 교향곡 악보. 최수열 제공
리스트 파우스트 교향곡 악보. 최수열 제공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는 많이 알려졌지만 읽은 사람은 소수인 책 중 하나다. 철학·의학 등 여러 학문에서 일가를 이룬 늙은 학자 파우스트가 악마와 거래를 하면서 겪는 여러 이야기를 다뤘다. 이 이야기는 여러 음악가를 매혹했는데,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 슈만의 '파우스트의 장면들', 구노의 '파우스트'를 비롯해 말러, 사라사테, 슈베르트, 무소르그스키 등 스무명이 넘는 작곡가들이 파우스트를 소재로 창작에 활용했다.

이중 리스트의 파우스트 교향곡은 세 개의 악장이 파우스트 속 인물들을 각각 다루고 있어 표제적인 성격이 강한 게 특징. 이런 이유로 음악학자들은 3개의 교향시(표제가 명확하고 형식·주제 등이 자유로운 단일 악장의 관현악곡)를 하나로 묶은 형태로 본다. 파우스트 교향곡에는 파우스트를 상징하는 여러 주제가 변형, 발전하면서 내적으로 요동치는 파우스트의 심리를 표현했다.

"파우스트 희곡은 상징이 많고, 난해합니다. 다행히 리스트는 파우스트를 서사적으로 푼 게 아니라 갈등하는 인간 파우스트, 구원자이자 사랑의 대상 그레첸,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악마, 세 인물을 중심으로 작곡했어요. 책은 완독을 포기했는데 음악적으로는 정리가 잘 됐습니다.(웃음)"
최수열 프로필 ⓒPiljoo Hwang
최수열 프로필 ⓒPiljoo Hwang
최수열은 인터뷰에서 "잘하는 것을 더 잘하고 싶다"고 재차 강조했다. "2~3번 성공적으로 한 작품은 제 무기로 쓸 수 있는 작품, 잘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렇게 쌓아온 레퍼토리를 다시 연주해서 완성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영화 배우들도 각자 특화된 역할이 있듯 음악가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택과 집중'에 무게를 둡니다."

그는 특히 현대음악에 강점을 보여왔다. 독일의 현대음악 단체 앙상블 모데른, 서울시향 '아르스노바' 등 여러 현대음악 단체 및 프로젝트와 협업했다. 지난해부터는 예술의전당에서 '최수열의 밤 9시 즈음에'라는 현대음악 콘서트도 마련했다.

교향시 또한 현대음악과 함께 그가 집중하는 장르다. 이유는 단순하다. 길이가 짧은 음악을 선호한다는 것. "대부분의 교향시는 길어야 1시간 남짓이에요. 저는 짧은 시간 안에 음악을 풀어가는 걸 좋아하거든요. 교향시에서 리스트와 R. 슈트라우스를 빼놓을 수 없죠"
지휘하고 있는 최수열. 롯데문화재단
지휘하고 있는 최수열. 롯데문화재단
20년 넘게 포디움에 서 온 최수열은 지휘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낚시의 '손맛'처럼 음악이 내 손에 끌려들어 오는 맛이 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언뜻 보면 춤과 지휘를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둘 다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니까요. 차이점은 춤은 음악을 변화시킬 수 없지만, 지휘는 음악을 '변화시켜야만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지휘는 음악보다 조금 앞서가요. 그렇게 제게 음악이 딸려오는 느낌이 지휘의 묘미랄까요."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