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죽는다' 불안감 확산…응급실 뺑뺑이 끝 사망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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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 사태가 6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응급실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쓰러진 40대 응급환자가 병원 14곳을 돌다 119구급차에서 숨을 거뒀다.
부산에서는 연일 이어진 폭염 속에 한 40대 남성이 온열질환 의심 증상으로 쓰러지며 머리를 크게 다쳤다. 하지만 국내 두 번째로 큰 도시 부산에서조차, 갈 수 있는 응급실이 없었고 차량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울산 병원에 도착했지만 골든타임을 놓치고 숨지고 말았다.
지난 15일에는 충북 진천에서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가 응급실을 찾지 못해 119구급차 안에서 아이를 낳았다.
올 상반기, 119구급차가 의료기관을 찾지 못해, 환자를 4차례 다른 병원으로 이송한 경우는 모두 17번, 지난 한 해 전체인 15번을 반년도 채 안 돼 앞질렀다.
119구급차 재이송 전체로 보면 2천645건인데, 40.9%인 1081건은 '전문의 부재'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애초 지역과 시골을 중심으로 만연했던 열악한 의료 환경이 이젠 대도시로도 확산하는 상황이다.
정치인도 의료공백 장기화의 당사자가 되는 걸 피할 수 없었다.
김종인 전 개혁신당 상임 고문은 최근 낙상 사고 후 수십 곳의 응급실에서 거절당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례의 주인공이 됐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22일 한 라디오에 출연하며 오른쪽 이마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진행자가 이마를 다친 경위를 묻자 김 전 고문은 "새벽에 잘못하다가 넘어져서 이마가 깨졌다"며 "119가 와서 피투성이가 된 저를 일으켜서 응급실에 가려고 22군데를 전화했는데도 안 받아줬다"고 주장했다.
김 전 고문은 결국 어렵게 찾은 응급실에서 이마 8㎝ 남짓을 꿰맸다고 한다. 그는 자기 경험을 전하며 "이번에 의대 증원 문제를 갖고 의료대란이 나서 우리나라 의료체제에 적잖은 손상이 올 수 있는 우려가 있다"며 "이것이 무너졌을 적에는 정권 자체도 유지하기 힘들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전 고문의 발언 중 '내 신분을 밝혔다'는 부분에서 정치인의 특권의식 논란이 불거지긴 했지만 그의 사례는 누구나 넘어져 이마가 깨져도 응급조치를 받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대로라면 환자가 몰리는 추석 연휴엔 '셧다운 대란'까지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비응급환자 및 경증 응급환자가 권역응급의료센터, 권역외상센터, 전문응급의료센터 등을 내원한 경우 응급실 진료비의 본인부담률을 90%로 늘리는 방안을 도입했다.
복지부는 "비응급환자 및 경증 응급환자가 권역응급의료센터 등을 이용할 경우 응급실 진료비의 본인 부담을 상향함으로써 응급실 과밀화 방지, 중증 응급환자의 적시 진료, 응급의료 자원의 효율적 활용 등에 기여하려는 것"이라고 법 개정이유를 밝혔다.
경증 환자도 응급실로 몰리는 명절 연휴를 앞두고 내놓은 대책이긴 하지만 '진료비 90% 자기 부담'이라는 설명에 '돈 없으면 아플 수도 없나'라는 자조적인 비판이 터져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전공의가 빠져나간 자리를 메워온 전문의 간호사까지 흔들리며 의료 위기가 한층 가속하는 양상이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에 따르면 전국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지난해 말 1418명에서 이달 초 1502명으로 늘었지만, 같은 기간 응급실 근무 전공의 500명이 이탈했다. 응급실에 남은 의료진의 번아웃(소진)과 병과·퇴직 등으로 구인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최상위 응급의료기관들도 인력난 등에 진료 차질을 겪고 있다.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는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선 올해 1월부터 이달까지 응급의학과 전문의 14명 중 3명이 사직했고, 4명이 추가로 사직서를 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오는 29일 총파업 돌입을 예고했다.
앞서 보건의료노조는 61개 사업장 조합원 2만9705명을 대상으로 지난 19~23일 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한 결과, 조합원 2만4257명이 참가한 가운데 2만2101명이 파업에 찬성해 찬성률 91.11%를 기록한 바 있다.
여기에는 노조 소속 61개 사업장(공공병원 31곳·민간병원 30곳)의 조합원(응급실·중환자실 등에 근무하는 필수 유지 업무 인력 제외)들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조합원의 70%가량이 간호사인 만큼 의료공백이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간호사들은 그동안 전공의 자리는 물론 의료 현장을 지키다 피로도가 극에 달해 사직한 교수들 공백까지 메워왔으나, 간호사들 역시 한계에 부딪혔다고 분석한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의료대란이 생각보다 심각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퇴직한 전공의들이 돌아오길 기대하며 추가모집도 하지 않았는데 복귀는 요원한 상황이다. 실낱같은 희망만 가지고 연일 당직을 서며 공백을 채우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런 생활이 가능할지는 모른다고.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권역응급센터에서 혼자 근무하고 있는데 얼마 전 젊은 환자의 팔다리가 터져나간 중증 외상 교통사고가 났다. 서울·경기의 모든 병원에서 거절당했다고 한다"면서 "처음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밤새 그를 살렸다. 의료진의 번아웃이 일상이 됐다"고 경고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쓰러진 40대 응급환자가 병원 14곳을 돌다 119구급차에서 숨을 거뒀다.
부산에서는 연일 이어진 폭염 속에 한 40대 남성이 온열질환 의심 증상으로 쓰러지며 머리를 크게 다쳤다. 하지만 국내 두 번째로 큰 도시 부산에서조차, 갈 수 있는 응급실이 없었고 차량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울산 병원에 도착했지만 골든타임을 놓치고 숨지고 말았다.
지난 15일에는 충북 진천에서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가 응급실을 찾지 못해 119구급차 안에서 아이를 낳았다.
올 상반기, 119구급차가 의료기관을 찾지 못해, 환자를 4차례 다른 병원으로 이송한 경우는 모두 17번, 지난 한 해 전체인 15번을 반년도 채 안 돼 앞질렀다.
119구급차 재이송 전체로 보면 2천645건인데, 40.9%인 1081건은 '전문의 부재'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애초 지역과 시골을 중심으로 만연했던 열악한 의료 환경이 이젠 대도시로도 확산하는 상황이다.
정치인도 의료공백 장기화의 당사자가 되는 걸 피할 수 없었다.
김종인 전 개혁신당 상임 고문은 최근 낙상 사고 후 수십 곳의 응급실에서 거절당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례의 주인공이 됐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22일 한 라디오에 출연하며 오른쪽 이마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진행자가 이마를 다친 경위를 묻자 김 전 고문은 "새벽에 잘못하다가 넘어져서 이마가 깨졌다"며 "119가 와서 피투성이가 된 저를 일으켜서 응급실에 가려고 22군데를 전화했는데도 안 받아줬다"고 주장했다.
김 전 고문은 결국 어렵게 찾은 응급실에서 이마 8㎝ 남짓을 꿰맸다고 한다. 그는 자기 경험을 전하며 "이번에 의대 증원 문제를 갖고 의료대란이 나서 우리나라 의료체제에 적잖은 손상이 올 수 있는 우려가 있다"며 "이것이 무너졌을 적에는 정권 자체도 유지하기 힘들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전 고문의 발언 중 '내 신분을 밝혔다'는 부분에서 정치인의 특권의식 논란이 불거지긴 했지만 그의 사례는 누구나 넘어져 이마가 깨져도 응급조치를 받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대로라면 환자가 몰리는 추석 연휴엔 '셧다운 대란'까지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비응급환자 및 경증 응급환자가 권역응급의료센터, 권역외상센터, 전문응급의료센터 등을 내원한 경우 응급실 진료비의 본인부담률을 90%로 늘리는 방안을 도입했다.
복지부는 "비응급환자 및 경증 응급환자가 권역응급의료센터 등을 이용할 경우 응급실 진료비의 본인 부담을 상향함으로써 응급실 과밀화 방지, 중증 응급환자의 적시 진료, 응급의료 자원의 효율적 활용 등에 기여하려는 것"이라고 법 개정이유를 밝혔다.
경증 환자도 응급실로 몰리는 명절 연휴를 앞두고 내놓은 대책이긴 하지만 '진료비 90% 자기 부담'이라는 설명에 '돈 없으면 아플 수도 없나'라는 자조적인 비판이 터져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전공의가 빠져나간 자리를 메워온 전문의 간호사까지 흔들리며 의료 위기가 한층 가속하는 양상이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에 따르면 전국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지난해 말 1418명에서 이달 초 1502명으로 늘었지만, 같은 기간 응급실 근무 전공의 500명이 이탈했다. 응급실에 남은 의료진의 번아웃(소진)과 병과·퇴직 등으로 구인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최상위 응급의료기관들도 인력난 등에 진료 차질을 겪고 있다.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는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선 올해 1월부터 이달까지 응급의학과 전문의 14명 중 3명이 사직했고, 4명이 추가로 사직서를 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오는 29일 총파업 돌입을 예고했다.
앞서 보건의료노조는 61개 사업장 조합원 2만9705명을 대상으로 지난 19~23일 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한 결과, 조합원 2만4257명이 참가한 가운데 2만2101명이 파업에 찬성해 찬성률 91.11%를 기록한 바 있다.
여기에는 노조 소속 61개 사업장(공공병원 31곳·민간병원 30곳)의 조합원(응급실·중환자실 등에 근무하는 필수 유지 업무 인력 제외)들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조합원의 70%가량이 간호사인 만큼 의료공백이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간호사들은 그동안 전공의 자리는 물론 의료 현장을 지키다 피로도가 극에 달해 사직한 교수들 공백까지 메워왔으나, 간호사들 역시 한계에 부딪혔다고 분석한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의료대란이 생각보다 심각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퇴직한 전공의들이 돌아오길 기대하며 추가모집도 하지 않았는데 복귀는 요원한 상황이다. 실낱같은 희망만 가지고 연일 당직을 서며 공백을 채우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런 생활이 가능할지는 모른다고.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권역응급센터에서 혼자 근무하고 있는데 얼마 전 젊은 환자의 팔다리가 터져나간 중증 외상 교통사고가 났다. 서울·경기의 모든 병원에서 거절당했다고 한다"면서 "처음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밤새 그를 살렸다. 의료진의 번아웃이 일상이 됐다"고 경고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