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의 상품권을 주는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 일종의 기본소득이다. 민주당은 당 강령 전문에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불평등을 극복하고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는 기본 사회’를 명시하기로 했다. 국민의힘 강령엔 이미 ‘국가는 국민이 기본소득을 통해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한다’고 명시돼 있다. 기본소득은 과연 여야 정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불평등을 극복하고 전 국민의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효과적인 수단일까.
 '월 132만원' 공돈 생기면 재산 늘고 건강해진단 건 '착각'

공돈 줬더니 소비 늘고 자산 감소

기본소득의 효과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연구 결과가 지난달 나왔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후원한 연구로도 주목받은 기본소득 실험이다. 대상은 미국 텍사스주와 일리노이주에 사는 21~40세 1000명이었다. 이들의 연간 가계소득은 미국 정부가 정한 빈곤선의 300% 미만으로 중간 소득층과 저소득층에 해당했다. 연구진은 2020년 11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3년간 이들에게 월 1000달러(약 132만원)를 조건 없이 지급했다. 기본소득의 효과를 더욱 엄밀하게 검증하기 위해 대조군 2000명에게는 같은 기간 월 50달러를 줬다.

월 1000달러의 기본소득을 받은 그룹은 월평균 지출이 310달러 늘었다. 식료품, 집세, 교통비 지출이 특히 많이 증가했다. 공돈이 생겼으니 소비가 늘어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재산은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외 소득이 생겼으면 재산이 늘었을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저축이 좀 늘긴 했지만, 부채가 더 크게 증가해 순자산은 오히려 감소했다. 늘어난 부채가 주택 매입 등 자산 형성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자동차 할부 대출 비중이 컸다.

주당 근로 시간은 1.3시간 줄었다. 이 때문에 기본소득 그룹의 연간 근로소득은 대조군보다 1500달러 낮았다. 기본소득을 줬더니 많이 쓰고, 저축은 안 하고, 빚을 늘리고, 일은 덜 한 것이다. 연구진은 “현금 지원이 젊은 저소득 가구의 재무 상태를 지속적으로 개선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싱글맘·싱글대디에겐 도움

긍정적 결과도 일부 있었다.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은 처방받지 않은 진통제 복용을 줄이고 술도 덜 마셨다. 대조군에 비해 치과 진료를 10%, 동네병원 진료는 8% 더 받았다. 건강 관리에 더 많이 신경 쓰게 된 것이다. 다만 이들이 더 건강해지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워라밸 효과도 있었다. 한부모 가정의 가장들이 근로 시간을 특히 많이 줄였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육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0대 실험 참가자 중에선 일을 그만두고 대학에 다니는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30대 이상에선 자기 계발에 투자하는 경향은 나타나지 않았다. 창업 의사가 높아졌지만, 실제 창업으로 이어진 사례는 별로 없었다. 기본소득을 받으면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하고, 창의적인 일을 할 것이라는 기본소득 지지자들의 주장과는 맞지 않는 결과다. 연구진은 “인적 자본 투자에 유의미한 효과는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세금 늘고 불평등 악화

기본소득의 가장 큰 난관은 재원 문제다. 국민 1인당 25만원씩 딱 한 번 지급하는 데도 13조원이 든다. 올해 한국의 보건·복지·고용 분야 예산은 243조원이다. 이 돈을 전액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해도 1인당 연간 470만원, 월 39만원밖에 못 준다. 1인 가구 최저 생계비(월 133만원)의 30% 수준이다.

기본소득은 소득 분배도 악화시킨다. 장용성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2021년 김선빈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한종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과 쓴 ‘기본소득 도입의 경제적 효과 분석’ 논문에 따르면 만 25세 이상 국민에게 1인당 월 30만원을 지급할 경우 지니계수가 0.413에서 0.514로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니계수는 0과 1 사이 값으로 나타나는데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뜻이다.

증세도 불가피하다. 앞의 논문에서는 현재 7% 정도인 근로소득세 실효세율을 24.4%로 높여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본소득은 ‘양극화와 불평등 극복’(민주당 강령),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삶’(국민의힘 강령)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