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글로벌 위상 달라진 현대차·기아의 숙제
“폭스바겐그룹이 없네요.”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A-’로 각각 높인 지난 22일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가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A등급을 받은 완성차 회사들을 정리하다가 한 말이다. 나머지 무디스와 피치 등 신평사들은 올 2월 현대차·기아의 신용등급을 A로 상향 조정했다.

실제로 여기에 해당하는 회사는 도요타와 혼다, 메르세데스벤츠뿐이다. BMW는 피치로부터 신용등급을 받지 않아 안 보인다고 해도 현대차·기아보다 지난해 120여만 대를 더 많이 팔아 도요타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한 폭스바겐그룹이 명단에 빠져 있다.

과거 폭스바겐그룹도 글로벌 3대 신평사로부터 모두 A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2015년 폭스바겐그룹이 자동차 연비를 소프트웨어로 조작한 ‘디젤게이트’가 터지자 S&P는 곧바로 신용등급을 두 차례 낮췄다. 그 대가로 이젠 현대차·기아보다 한 단계 낮은 ‘BBB+’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기아의 신용등급이 높아진 건 실적 덕분이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낸 현대차·기아는 올 상반기에도 역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매출도 안정적이지만 영업이익률(현대차 9.1%, 기아 13.1%)이 같은 기간 도요타(10.6%)보다 높다.

2020년 정의선 회장이 취임하면서 위상이 달라졌다는 게 현대차·기아 내외부의 공통된 분석이다. 과감한 전동화 전환 결정, 하이브리드카 및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시장 공략, 제네시스의 프리미엄화가 주효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최대 해외 시장인 미국에서 현대차·기아의 점유율은 2020년 8.4%에서 올 상반기 10.3%로 높아졌고, 현대차와 기아의 부채 비율(단일 기준)은 100%대에서 올 상반기 각각 63.5%, 69.3% 등으로 낮아졌다.

하지만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고 취해만 있을 순 없다. 현대차·기아는 아직 세계 3위이며, 앞으로 펼쳐질 전기차 시장에선 이 순위도 장담하기 힘들다. 폭스바겐그룹의 연비 조작 사건처럼 쉽게 타격을 받는 것도 완성차 시장이다.

최근 만난 한 현대차그룹 고위 인사는 지금의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아직 내연기관은 독일차에 뒤지고, 전기차는 중국이 무섭게 달려온다. 올 하반기부터 글로벌 완성차회사엔 고통의 시간이 될 것으로 긴 캐즘을 누가 버티냐의 싸움이 될 것이다.” 현대차·기아 구성원과 협력사들이 생각해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