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채집하는 예술가의 '듣는 그림'이 갤러리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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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개인전 ‘감각의 저장’
백아트에서 10월 12일까지
백아트에서 10월 12일까지
‘들리는 그림’은 낯선 개념이 아니다. 동시대 미술가들은 시각예술의 틀을 깨는 ‘소리의 시각화’를 연구했다. 1963년 개인전에 건반을 누르면 사물이 움직이는 ‘총체 피아노’를 내놓은 백남준이나, 느닷없이 이 피아노를 도끼로 부순 요셉 보이스가 소리를 소재로 삼은 거장들이다. 스타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가 기획한 올해 광주비엔날레도 소리에 주목한 전시를 선보인다.
다만 소리는 대체로 ‘플럭서스’(FLUXUS·1960년대 탈장르 전위예술 운동)적 관점에서 활용돼 왔다. 미술에 다양성을 부여하지만, 본질적으론 시각 매체를 보조하는 수단이란 인식도 적잖다. 서울 화동 백아트에서 열린 김준(48) 개인전 ‘감각의 저장’이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까닭이다. 미술전시에 선보인 모든 작품의 주된 재료가 오롯이 ‘들리는 것’이라는 점에서다. 10년간 자연에서 채집한 ‘사운드스케이프’
“나는 페인터도, 조각가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김준의 예술은 독특하다. 지리학·생태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소리를 채집해 아카이브로 재구성하는 그의 작업은 인위적으로 소리를 만들어내거나 다듬는 여타 ‘사운드 아티스트’들과도 다소 결이 다르다. 붓 없이 소리로 풍경을 그리고, 이를 캔버스가 아닌 나무 상자 속 스피커에 담는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다.
전시에는 10여 년간 김준이 강원도 일대, 뉴질랜드, 호주에서 만난 암석과 식물들이 내는 소리를 녹음한 작품들이 나왔다. 주요작인 ‘바람에 흐르는 음악’ 시리즈는 강원도 산악지대에서 채집한 바람, 물, 나무 소리가 어우러졌다.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서울 한복판 갤러리 안에서 강원도 산골에 서 있던 작가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것. 갤러리 측은 “작품에 담긴 장소성은 관객의 주관적 상상과 경험으로도 전이된다”고 했다. 이런 장소성은 같은 시간선에 국한되지 않는다. ‘흔들리고 이동하는 조각들’은 암석의 탁본이 그려진 상자 스피커에 영월의 지질공원에 있는 화석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내는 소리가 담겼다. 해수에서 주로 만들어지는 이 화석은 5억 년 전 이 지역이 바다였다는 증거다. 채집해 온 소리로 아득한 과거의 영월까지 만날 수 있는 셈이다.
뉴질랜드 남섬에서 3개월간 체류하며 얻은 돌멩이들을 나무로 만든 펜듈럼 구조물 위에 얹은 ‘깊은 우물’ 시리즈도 재밌다. 돌을 두드려 만든 소리의 파동이 펜듈럼을 움직이는데, 돌의 종류에 따라 펜듈럼의 흔들리는 정도가 다르다. 돌마다 경도가 다른 만큼, 진동수도 제각각이라 서로 내는 소리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 김준은 “소리 진동을 시각화했다”고 했다.
김준은 독일 베를린예술대학에서 유학하며 소리로 하는 미술을 시작했다. 도시 속 소음부터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없는 초저주파 불가청음까지 채집하며 사운드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국내에선 보기 드문 희소한 작업인데다, 작품성도 인정받아 2018년 송은미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6년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난지도를 찍은 사진에 캠핑장과 공원으로 변모한 현재 모습의 소리를 담은 ‘가공된 정원’이 대표작이다. 난지도 공원 지하는 여전히 쓰레기로 메탄가스가 나오는 터라 일반적인 공원이나 자연이 뿜어내는 파장과 다른 소리가 난다는 점에서 가려진 장소성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이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술관이나 비엔날레가 아닌 상업 화랑이 꾸린 ‘사운드아트’ 전시가 생경하다는 반응도 있다. 잔뼈가 굵은 컬렉터 입장에서도 소리를 담은 오브제가 어느 정도의 값어치를 지니는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실제로 김준의 작품은 대부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고,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준은 “청각적인 것도 시각으로 보여줄 수 밖에 없는 게 미술의 형태”라며 “갤러리라는 상업 공간에서도 작업의 특성을 살릴 수 있게 구조적으로 전시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12일까지. 유승목 기자
다만 소리는 대체로 ‘플럭서스’(FLUXUS·1960년대 탈장르 전위예술 운동)적 관점에서 활용돼 왔다. 미술에 다양성을 부여하지만, 본질적으론 시각 매체를 보조하는 수단이란 인식도 적잖다. 서울 화동 백아트에서 열린 김준(48) 개인전 ‘감각의 저장’이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까닭이다. 미술전시에 선보인 모든 작품의 주된 재료가 오롯이 ‘들리는 것’이라는 점에서다. 10년간 자연에서 채집한 ‘사운드스케이프’
“나는 페인터도, 조각가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김준의 예술은 독특하다. 지리학·생태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소리를 채집해 아카이브로 재구성하는 그의 작업은 인위적으로 소리를 만들어내거나 다듬는 여타 ‘사운드 아티스트’들과도 다소 결이 다르다. 붓 없이 소리로 풍경을 그리고, 이를 캔버스가 아닌 나무 상자 속 스피커에 담는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다.
전시에는 10여 년간 김준이 강원도 일대, 뉴질랜드, 호주에서 만난 암석과 식물들이 내는 소리를 녹음한 작품들이 나왔다. 주요작인 ‘바람에 흐르는 음악’ 시리즈는 강원도 산악지대에서 채집한 바람, 물, 나무 소리가 어우러졌다.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서울 한복판 갤러리 안에서 강원도 산골에 서 있던 작가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것. 갤러리 측은 “작품에 담긴 장소성은 관객의 주관적 상상과 경험으로도 전이된다”고 했다. 이런 장소성은 같은 시간선에 국한되지 않는다. ‘흔들리고 이동하는 조각들’은 암석의 탁본이 그려진 상자 스피커에 영월의 지질공원에 있는 화석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내는 소리가 담겼다. 해수에서 주로 만들어지는 이 화석은 5억 년 전 이 지역이 바다였다는 증거다. 채집해 온 소리로 아득한 과거의 영월까지 만날 수 있는 셈이다.
뉴질랜드 남섬에서 3개월간 체류하며 얻은 돌멩이들을 나무로 만든 펜듈럼 구조물 위에 얹은 ‘깊은 우물’ 시리즈도 재밌다. 돌을 두드려 만든 소리의 파동이 펜듈럼을 움직이는데, 돌의 종류에 따라 펜듈럼의 흔들리는 정도가 다르다. 돌마다 경도가 다른 만큼, 진동수도 제각각이라 서로 내는 소리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 김준은 “소리 진동을 시각화했다”고 했다.
김준은 독일 베를린예술대학에서 유학하며 소리로 하는 미술을 시작했다. 도시 속 소음부터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없는 초저주파 불가청음까지 채집하며 사운드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국내에선 보기 드문 희소한 작업인데다, 작품성도 인정받아 2018년 송은미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6년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난지도를 찍은 사진에 캠핑장과 공원으로 변모한 현재 모습의 소리를 담은 ‘가공된 정원’이 대표작이다. 난지도 공원 지하는 여전히 쓰레기로 메탄가스가 나오는 터라 일반적인 공원이나 자연이 뿜어내는 파장과 다른 소리가 난다는 점에서 가려진 장소성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이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술관이나 비엔날레가 아닌 상업 화랑이 꾸린 ‘사운드아트’ 전시가 생경하다는 반응도 있다. 잔뼈가 굵은 컬렉터 입장에서도 소리를 담은 오브제가 어느 정도의 값어치를 지니는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실제로 김준의 작품은 대부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고,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준은 “청각적인 것도 시각으로 보여줄 수 밖에 없는 게 미술의 형태”라며 “갤러리라는 상업 공간에서도 작업의 특성을 살릴 수 있게 구조적으로 전시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12일까지.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