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향하던 헤즈볼라 무인기가 이스라엘 공군에 의해 격추되는 모습(사진=AFP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향하던 헤즈볼라 무인기가 이스라엘 공군에 의해 격추되는 모습(사진=AFP연합뉴스)
중동, 러시아·우크라이나, 중국과 대만 등 세계 곳곳에서 지정학적 위험이 확대된 상황에서 글로벌 방산업체들이 남몰래 웃음 짓고 있다. 전쟁 덕분에 각국 정부의 신형 무기 주문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주요 방산업체들은 향후 몇 년간 기록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방비 증가에 역대급 현금흐름

2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투자분석회사 버티컬 리서치 파트너스 조사 결과 글로벌 15대 방산업체(록히드마틴, 에어버스, 탈레스, 다쏘, 레오나르도, 사브, 엘빗 시스템스, BAE시스템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라인메탈, 제너럴 다이내믹스, 보잉, 노스럽 그루만, RTX, L3해리스 테크놀로지스)는 2026년 말에 520억달러(약 70조원)의 잉여 현금 흐름을 기록할 전망이다. 2021년 말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미국의 5대 방산업체는 같은 기간 260억달러의 현금을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역시 2021년에 비해 두 배가량 큰 규모다.

유럽에서는 영국의 BAE 시스템즈, 독일의 라인메탈, 스웨덴의 사브 등 방산 기업이 최근 탄약 및 미사일 신규 계약을 수주하면서 이들 기업의 현금 흐름이 같은 기간 4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방산기업 현금흐름 추이 및 전망치(사진=FT 캡처)
글로벌 방산기업 현금흐름 추이 및 전망치(사진=FT 캡처)
주요국 정부가 급격히 국방비 지출을 늘리면서 방위 산업에 호황이 찾아왔다. 미국에서는 최근 우크라이나, 대만,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 법안을 통해 미국의 5대 방산 기업인 록히드 마틴, RTX, 노스럽 그루먼, 보잉, 제너럴 다이내믹스 및 협력사들에 국방 예산 130억 달러가 배정됐다. 영국 국방부도 최근 3년간 우크라이나에 76억 파운드(약 13조원)를 투입했다. FT는 “방산업체들의 무기 주문량은 사상 최고치에 근접했다”고 전했다.

○자사주 매입·배당 기대

방위산업 특성상 새로운 무기 계약이 매출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방산업체들은 무기가 인도되는 시점을 매출 발생 시점으로 잡는다. 몇 년 뒤 방산업체들의 ‘실적 파티’가 확실시된 만큼, 시장에서는 방산업체들이 확보한 현금을 어디에 쓸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로버트 스탈라드 버티컬 리서치 분석가는 “방산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많은 현금을 보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인수합병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에 쓸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방산기업들은 신규 주문이 폭증하기도 전에 이미 자사주 매입에 수십억 달러를 투입했다고 FT는 보도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의 항공우주 및 방산 기업들의 지난해 자사주 매입 규모는 5년 만에 가장 컸다. 록히드 마틴과 RTX는 지난해 거의 190억 달러에 달하는 자사주를 매입했고, BAE 시스템즈는 지난 3년간 진행한 15억파운드 규모의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을 2분기에 마무리한 뒤, 다시 15억 파운드 규모의 추가 매입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지난 7월 판버러 에어쇼에서 공개한 BAE 시스템즈의 드론(사진=로이터연합뉴스)
지난 7월 판버러 에어쇼에서 공개한 BAE 시스템즈의 드론(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일각에서는 방산업체들의 현금 지출을 날이 선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방산 기업이 자사주 매입에 활용할 현금은 정부 지출, 즉 세금으로 벌어들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FT는 “미국 의회 일부는 방산 기업들이 새로운 생산 시설에 충분히 투자하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전했다.

○인수·합병 눈독

분석가들은 기업들이 추가적인 인수합병을 기회를 모색할 것으로 예측하면서도, 규제 문제로 인해 대규모 인수는 제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라인메탈은 이달 미국의 군용 차량 부품 제조업체 록 퍼포먼스를 9억5000만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하며 “이번 거래가 미국 전투 차량 및 트럭 계약 수주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아민 파퍼거 라인메탈 최고경영자(CEO)는 “큰 물고기를 잡지 못하더라도, 작은 물고기들을 잡을 수 있고, 작은 물고기들은 미국에서 수십억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비유했다.

바이런 캘런 캡탈 알파 파트너스 분석가는 “규제 당국이나 각국 국방부가 크게 반발하지 않을 중간 규모의 회사들이 여전히 다른 회사를 인수할 여지가 있다”며 “일부 사모펀드 소유의 방산업체들도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한동안 방위비 지출은 감소할 전망이다. 캘런 분석가는 “방위산업은 순환적”이라며 “사람들은 수요 사이클이 10년이라고 하지만, 그사이에 정치, 안보가 바뀌면서 방위 수요도 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