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령' 레픽 아나돌, 미디어아트로 북촌 한옥을 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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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티스트 레픽 아나돌 인터뷰
북촌 푸투라서 亞 첫 개인전 개최
4억개의 이미지로 생성한 자연의 모습
두달간 아마존 우림에서 생활하기도
"AI는 문제의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
북촌 푸투라서 亞 첫 개인전 개최
4억개의 이미지로 생성한 자연의 모습
두달간 아마존 우림에서 생활하기도
"AI는 문제의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
과거 사대부들이 모여 살던 서울 북촌 한옥마을. 예스러운 기왓장 사이로 높이 10m가 훌쩍 넘는 미디어아트가 들어섰다. 시시각각 색깔과 형태가 바뀌는 이 영상은 4억개가 넘는 동물 이미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이 생성해낸 것. 튀르키예 출신의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 레픽 아나돌(39·사진)의 '기계 환각-LNM: 동물'이다.
'미술계의 이단아'는 그를 표현하기에 낡은 수식어가 된 지 오래다. 요즘 그의 AI 작품은 주류 무대에 오르내린다. 지난해 개관한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구형 공연장 '스피어'의 외관을 장식했고,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은 300만명이 넘게 찾으며 전시 기간이 네 번이나 연장됐다. 올해 1월 정·재계 유력인사들이 모인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에선 자연을 다룬 신작들을 선보이며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다보스포럼에서 공개한 자연 이미지의 '진화'한 버전을 들고 방한한 그를 26일 북촌 푸투라 서울에서 만났다. 기술의 첨단을 달리는 그가 '아시아 첫 개인전'의 무대로 서울의 구도심 북촌을 고른 이유는 뭘까. "과거의 지혜를 간직한 자연은 미래를 위해 지켜야 할 대상이죠. 서울의 옛 모습을 대표하는 공간에서, 미래의 기술로 자연을 다룬 AI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북촌의 과거와 AI의 미래가 만나다
"이 향수 한번 뿌려 보시겠어요? 열대우림에서 수집한 50만개의 향기 분자를 바탕으로 저의 AI가 만들어낸 냄새입니다. 아, 그리고 사진은 거울이 있는 이 방이 가장 잘 나와요." 전시장에서 만난 아나돌에게 전시 공간 소개를 요청하자 유쾌한 미소와 함께 이런 답변을 들려줬다. 시청각부터 후각까지 모든 감각으로 자연에 몰입할 수 있는 전시를 위해 야심 차게 준비했다는 그다. 실제로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전시장 바닥과 벽에 거울을 설치하고, 작품으로 천장을 통째로 덮는가 하면, 향기를 분사하는 장치를 곳곳에 설치했다.
작가가 전시 공간 자체를 일종의 캔버스로 여긴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걸작으로 꼽히는 '카사 바트요'에서 지난 2022년 선보인 미디어아트가 단적인 예다. 작가는 건물 외벽에 물결무늬 영상을 상영했는데, 마치 가우디의 건축세계를 AI가 학습한 듯 건물과 한몸처럼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그동안 가우디, 프랭크 게리, 자하 하디드 등 저한테 영웅과도 같은 건축가들이 만든 공간에서 전시하는 영광을 누렸죠. 이번 푸투라 서울의 공간도 가히 그 이상입니다."
아나돌의 국내 첫 개인전이자 아시아 첫 개인전 장소로 발탁된 푸투라 서울은 오는 29일 북촌에 개관하는 신생 전시공간이다. 3개 층에 걸쳐 전시장과 옥상정원, 테라스 등을 마련했다. 한옥 처마 아래 대청마루에 들어선 것처럼 차분한 건축미가 백미다. 특히 11m에 달하는 넉넉한 층고는 아나돌의 영상을 대형 화면으로 감상하기에 적합했다. 아마존 원주민을 찾은 'AI의 전령사'
'대지의 메아리: 살아있는 아카이브'란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올해 초 다보스포럼과 2월 런던 서펜타인에서 선보인 전시의 연장선에 있다. 동물과 식물, 균류 등을 연상케 하는 영상은 작가와 그의 팀이 개발한 '대규모 자연 모델(LNM)'에 기반한다. LNM은 이들이 지난 10여년간 열대우림에서 직접 수집한 이미지와 세계 곳곳의 박물관에서 받은 자료를 학습한 AI다.
전시장 입구에는 LNM 프로그램의 개발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이 흘러나온다. "LNM은 쉬지 않고 원천 자료를 업데이트하고 학습합니다. 지난 전시들에 비해 아마존 우림의 이미지와 소리 등이 추가되며 한층 진화한 셈이죠." 작가가 자연에 관심을 갖게 된 건 3년 전 아마존의 원주민인 야와나와(Yawanawa) 부족과 인연을 맺으면서다. 1000명 남짓의 원주민과 2주간 생활하며 이들이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에 감명받았다고 한다. 원주민들은 그를 본명이 아닌 '차나(Channa)'라고 불렀다. "차나는 아마존의 토착 조류로, 지혜를 상징하는 새라고 합니다. 'AI의 전령'인 저한테 잘 어울린다면서 이런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도시로 돌아온 아나돌은 '윈즈 오브 야와나와'(Winds of Yawanawa)라는 NFT(대체불가능토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마존 자연에 기반한 작품 1000여점을 통해 총 250만달러(약 33억원)를 모금했다. 수익금 일부는 야와나와 부족에 기부해 마을의 첫 학교와 박물관을 세우는 데 보탰다. 환경오염 vs. 기술발전…AI의 미래는
아나돌이 AI에 기반한 예술을 꿈꾼 건 여덟살 때 일이다. 공상과학(SF) 영화 '블레이드 러너'(1993)를 보고, 또 어머니로부터 생애 첫 컴퓨터를 선물 받으면서 기술의 잠재력에 푹 빠졌다. "어린아이의 입장에서 놀라운 경험이었죠. 그때부터 기계가 인간의 협력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의 꿈은 현실이 됐다. 16년 전부터 '데이터 페인팅'이란 장르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2016년 구글의 레지던시 작가로 선정되며 AI 활용법을 배웠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등과 협업하며 지금까지 약 50억건의 데이터를 활용했다. 그는 AI를 두고 "생각하는 붓"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빅테크 기업들과 협업하는 그가 자연을 주제로 다루는 것이 '역설적이다'란 비판도 나온다. 학계의 추정에 따르면 연간 데이터 100기가바이트(GB)를 저장하는데 필요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0.2t에 달한다. 매년 천문학적인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보관하는 빅테크 기업들이 각급 단체로부터 '환경오염의 주범'으로도 거론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작가는 "빅테크 기업들이 자연의 중요성을 환기하도록 '푸시(push)'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LNM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전적으로 재생에너지로만 구동되는 서버로 작업해온 이유다. 작가는 "엔비디아와도 지속해서 논의한 결과 그래픽처리장치(GPU) 에너지 사용률도 45% 절감하는 성과를 올린 것으로 전해들었다"고 덧붙였다.
"AI는 문제의 근원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동시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류가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달린 문제 아닐까요. 궁극적으론 AI가 생성한 이미지가 실제 현실이 되는 '생성 현실(GR)'을 꿈꿉니다."
전시는 9월 5일부터 12월 8일까지. 안시욱 기자
'미술계의 이단아'는 그를 표현하기에 낡은 수식어가 된 지 오래다. 요즘 그의 AI 작품은 주류 무대에 오르내린다. 지난해 개관한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구형 공연장 '스피어'의 외관을 장식했고,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은 300만명이 넘게 찾으며 전시 기간이 네 번이나 연장됐다. 올해 1월 정·재계 유력인사들이 모인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에선 자연을 다룬 신작들을 선보이며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다보스포럼에서 공개한 자연 이미지의 '진화'한 버전을 들고 방한한 그를 26일 북촌 푸투라 서울에서 만났다. 기술의 첨단을 달리는 그가 '아시아 첫 개인전'의 무대로 서울의 구도심 북촌을 고른 이유는 뭘까. "과거의 지혜를 간직한 자연은 미래를 위해 지켜야 할 대상이죠. 서울의 옛 모습을 대표하는 공간에서, 미래의 기술로 자연을 다룬 AI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북촌의 과거와 AI의 미래가 만나다
"이 향수 한번 뿌려 보시겠어요? 열대우림에서 수집한 50만개의 향기 분자를 바탕으로 저의 AI가 만들어낸 냄새입니다. 아, 그리고 사진은 거울이 있는 이 방이 가장 잘 나와요." 전시장에서 만난 아나돌에게 전시 공간 소개를 요청하자 유쾌한 미소와 함께 이런 답변을 들려줬다. 시청각부터 후각까지 모든 감각으로 자연에 몰입할 수 있는 전시를 위해 야심 차게 준비했다는 그다. 실제로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전시장 바닥과 벽에 거울을 설치하고, 작품으로 천장을 통째로 덮는가 하면, 향기를 분사하는 장치를 곳곳에 설치했다.
작가가 전시 공간 자체를 일종의 캔버스로 여긴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걸작으로 꼽히는 '카사 바트요'에서 지난 2022년 선보인 미디어아트가 단적인 예다. 작가는 건물 외벽에 물결무늬 영상을 상영했는데, 마치 가우디의 건축세계를 AI가 학습한 듯 건물과 한몸처럼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그동안 가우디, 프랭크 게리, 자하 하디드 등 저한테 영웅과도 같은 건축가들이 만든 공간에서 전시하는 영광을 누렸죠. 이번 푸투라 서울의 공간도 가히 그 이상입니다."
아나돌의 국내 첫 개인전이자 아시아 첫 개인전 장소로 발탁된 푸투라 서울은 오는 29일 북촌에 개관하는 신생 전시공간이다. 3개 층에 걸쳐 전시장과 옥상정원, 테라스 등을 마련했다. 한옥 처마 아래 대청마루에 들어선 것처럼 차분한 건축미가 백미다. 특히 11m에 달하는 넉넉한 층고는 아나돌의 영상을 대형 화면으로 감상하기에 적합했다. 아마존 원주민을 찾은 'AI의 전령사'
'대지의 메아리: 살아있는 아카이브'란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올해 초 다보스포럼과 2월 런던 서펜타인에서 선보인 전시의 연장선에 있다. 동물과 식물, 균류 등을 연상케 하는 영상은 작가와 그의 팀이 개발한 '대규모 자연 모델(LNM)'에 기반한다. LNM은 이들이 지난 10여년간 열대우림에서 직접 수집한 이미지와 세계 곳곳의 박물관에서 받은 자료를 학습한 AI다.
전시장 입구에는 LNM 프로그램의 개발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이 흘러나온다. "LNM은 쉬지 않고 원천 자료를 업데이트하고 학습합니다. 지난 전시들에 비해 아마존 우림의 이미지와 소리 등이 추가되며 한층 진화한 셈이죠." 작가가 자연에 관심을 갖게 된 건 3년 전 아마존의 원주민인 야와나와(Yawanawa) 부족과 인연을 맺으면서다. 1000명 남짓의 원주민과 2주간 생활하며 이들이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에 감명받았다고 한다. 원주민들은 그를 본명이 아닌 '차나(Channa)'라고 불렀다. "차나는 아마존의 토착 조류로, 지혜를 상징하는 새라고 합니다. 'AI의 전령'인 저한테 잘 어울린다면서 이런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도시로 돌아온 아나돌은 '윈즈 오브 야와나와'(Winds of Yawanawa)라는 NFT(대체불가능토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마존 자연에 기반한 작품 1000여점을 통해 총 250만달러(약 33억원)를 모금했다. 수익금 일부는 야와나와 부족에 기부해 마을의 첫 학교와 박물관을 세우는 데 보탰다. 환경오염 vs. 기술발전…AI의 미래는
아나돌이 AI에 기반한 예술을 꿈꾼 건 여덟살 때 일이다. 공상과학(SF) 영화 '블레이드 러너'(1993)를 보고, 또 어머니로부터 생애 첫 컴퓨터를 선물 받으면서 기술의 잠재력에 푹 빠졌다. "어린아이의 입장에서 놀라운 경험이었죠. 그때부터 기계가 인간의 협력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의 꿈은 현실이 됐다. 16년 전부터 '데이터 페인팅'이란 장르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2016년 구글의 레지던시 작가로 선정되며 AI 활용법을 배웠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등과 협업하며 지금까지 약 50억건의 데이터를 활용했다. 그는 AI를 두고 "생각하는 붓"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빅테크 기업들과 협업하는 그가 자연을 주제로 다루는 것이 '역설적이다'란 비판도 나온다. 학계의 추정에 따르면 연간 데이터 100기가바이트(GB)를 저장하는데 필요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0.2t에 달한다. 매년 천문학적인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보관하는 빅테크 기업들이 각급 단체로부터 '환경오염의 주범'으로도 거론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작가는 "빅테크 기업들이 자연의 중요성을 환기하도록 '푸시(push)'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LNM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전적으로 재생에너지로만 구동되는 서버로 작업해온 이유다. 작가는 "엔비디아와도 지속해서 논의한 결과 그래픽처리장치(GPU) 에너지 사용률도 45% 절감하는 성과를 올린 것으로 전해들었다"고 덧붙였다.
"AI는 문제의 근원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동시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류가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달린 문제 아닐까요. 궁극적으론 AI가 생성한 이미지가 실제 현실이 되는 '생성 현실(GR)'을 꿈꿉니다."
전시는 9월 5일부터 12월 8일까지.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