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신경훈 한국경제신문 기자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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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창구지도로 인해 주택시장이 왜곡되고 있습니다. 은행의 창구지도란 금융당국이 시장 논리가 아닌 방법으로 은행의 의사결정에 개입해 본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최근 서울 주거 선호 지역을 중심으로 주택가격이 오르자 대출한도나 금리 등에 대해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이 우려를 표현한 것이 대표적인 창구 지도입니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정하고, 그에 따라 시중금리가 움직이고 이에 맞춰 가계와 기업이 의사결정을 하는데 여기에 창구지도가 개입되면 통화의 흐름이 왜곡되고 미래 예측이 어렵게 됩니다. 후진국이나 중국, 러시아와 같은 독재국가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만, 금융 선진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특히 행정지도를 통한 직접적인 금리 통제는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창구지도가 도를 넘고 있습니다. 서울 주거 선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오르고 가계대출이 급증하자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점검 회의에서 전방위적 가계대출 관리를 주문했습니다. 은행들이 이에 대응하고자 주택담보대출 등 대출금리를 인상하자 금융감독원장이 다시 창구지도를 합니다. 은행들이 가계부채 관리에 대출금리 인상이라는 손쉬운 방법을 택해 이득만 챙기려 한다는 비판입니다. 그러면서 아예 대놓고 “개입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고 이야기합니다. 창구지도가 안 먹히고 다른 방향으로 가면 아예 방향까지 제시할 정도로 금융정책의 후진성은 심각합니다.

은행의 팔을 비틀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이런 방식은 후진적일 뿐만 아니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자본과 외환시장의 선진화에는 직격탄입니다. 해외에서 우리나라 정부의 이런 창구지도를 목격하게 된다면 금융선진화는 물 건너가게 됩니다. 한국증시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과 한국 국채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겁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금융시장의 왜곡으로 인해 주택시장 또한 영향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2024년 들어 8월19일까지 수도권의 아파트시장이 겨우 0.82% 올랐습니다. 서울의 상승률이 2.67%로 가장 높지만, 아파트시장에 국한되며 현재의 물가수준을 고려한다면 거의 오르지 않은 실정입니다.

이렇게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이 낮은 것은 전국의 대부분의 지역이 연간기준으로는 하락 또는 정체상태이지만 강남권과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 소위 주거 선호 지역을 중심으로 상승을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체 평균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겨우 서울의 외곽지역 그리고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지방이 올해 하반기나 내년에는 매매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창구지도로 인해 주택수요가 감소할 것이며 이 수요감소는 대부분 수도권 외곽지역이나 지방 아파트의 매매가격 상승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겁니다.

강남권 등 주거 선호 지역은 정부의 창구지도에 영향이 적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주택담보대출비율(LTV)가 낮은 곳이 강남입니다. 강남권 주택수요자들은 대출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대출 규제 등으로 인해 타격을 받을 수 없는 곳입니다. 불과 몇 년 전에는 15억원 이상 아파트에 대해 주택담보대출을 해주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대출 규제는 애꿎은 서민들만 피해를 보게 될 겁니다.

주택가격 상승을 불편하다고 느끼는 정부 입장에서 쓸 수 있는 규제 카드로는 대출이 거의 유일합니다. 공급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수요를 막는 것이 간단하면서 빠르게 도입할 수 있는 정책입니다. 하지만 이런 규제는 필히 부작용이나 풍선효과를 발생시킵니다. 갭투자의 증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서울 전체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지 않는 한 갭투자는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우대빵부동산을 방문하는 주택수요자들의 경우에도 올해 초 5%에 그치던 갭투자 비중은 20%에 가까이 늘었습니다. ‘주전거래’라고 해서 주인이 전세로 거주하면서 매매거래를 일으키는 경우도 가끔 목격됩니다.

법이나 시행령에도 없는 금융회사의 창구지도를 통한 대출 규제는 한국의 금융시장을 중국과 같은 후진국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대외신인도에서도 엄청난 타격을 줍니다. 나아가 주택시장을 왜곡되게 만들어 특정 지역이 과도하게 오르거나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수요를 늘릴 수 있습니다. 빠르고 쉽게 도입할 수 있는 대출 규제는 부작용이 많습니다. 5년 단임제 정부의 한계를 인식하고 주택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는 공급정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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