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정국의 비극은 중도 온건파의 설자리가 없었다는 것"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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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정국의 풍경>
1945~1948년 미군정기 현대사
"해방정국에서 좌우 갈등보다
좌익과 우익 각각 내부의 갈등이 더 심각"
1945~1948년 미군정기 현대사
"해방정국에서 좌우 갈등보다
좌익과 우익 각각 내부의 갈등이 더 심각"
"우리는 해방정국의 갈등을 설명하면서 좌우의 갈등이 비극을 낳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좌익 내부의 갈등과 우익 내부의 갈등이 좌우익 사이의 갈등보다 더 심각했고 더 적의에 차 있었으며 잔혹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해방정국을 더욱 비극의 길로 몰아갔다는 점이다." (<해방정국의 풍경>, 80~81쪽)
신복룡 전 건국대 교수가 쓴 <해방정국 풍경>은 일제 해방 직후 1945년부터 3년간 이어진 미군정 기간의 현대사를 다룬 책이다. 해방정국이라고 불리는 이 시기는 한국 현대사에서 이념 대림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기도 하다. 책은 이승만 김구 김일성 박헌영 등 당시 좌익과 우익, 중도 등을 대표하는 인물들 간에 일어난 일화와 사건을 상세히 소개한다. 저자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은 사람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저자는 해방정국의 희생자 가운데 대부분은 이념이 다른 적대 세력의 손에 희생된 것이 아니라, 같은 세력 내부의 갈등으로부터 내쳐졌다고 주장한다. 같은 이데올로기 집단 내에서도 중도 온건 노선을 배신이나 변절 또는 기회주의자로 보는 극단적인 이념에 사로잡혀 있던 시대라서다. 저자는 "중도 온건파가 설 자리가 없었다는 점은 그 뒤의 비극, 곧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김구 등 건국 1세대 인물들에 대한 저자 특유의 분석도 엿볼 수 있다. 민중적인 지지 기반이 취약해 민중 봉기나 지지를 통한 국가 건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김구는 윤봉길이나 이봉창 의사 등과 같이 순교자적 희생정신으로 무장된 개별 투사의 역할을 중시했단 설명이다. 저자는 의열 투쟁과 테러리즘이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지 않다는 다소 파격적인 주장도 내놓는다.
이승만에 대해서도 나름의 해석을 내놓는다. 영화 '건국전쟁' 속 "이승만이 민주주의자였기 때문에 혁명이 일어났다"는 대사에 대해 저자는 "역사의 평가가 그렇게 바뀐다면 수유리에 묻힌 150명의 영혼은 누가 위로할 수 있을까?"라며 반문한다. 모든 역사적 인물엔 과오와 공덕이 함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덕이 과오를 덮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신복룡 전 건국대 교수가 쓴 <해방정국 풍경>은 일제 해방 직후 1945년부터 3년간 이어진 미군정 기간의 현대사를 다룬 책이다. 해방정국이라고 불리는 이 시기는 한국 현대사에서 이념 대림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기도 하다. 책은 이승만 김구 김일성 박헌영 등 당시 좌익과 우익, 중도 등을 대표하는 인물들 간에 일어난 일화와 사건을 상세히 소개한다. 저자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은 사람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저자는 해방정국의 희생자 가운데 대부분은 이념이 다른 적대 세력의 손에 희생된 것이 아니라, 같은 세력 내부의 갈등으로부터 내쳐졌다고 주장한다. 같은 이데올로기 집단 내에서도 중도 온건 노선을 배신이나 변절 또는 기회주의자로 보는 극단적인 이념에 사로잡혀 있던 시대라서다. 저자는 "중도 온건파가 설 자리가 없었다는 점은 그 뒤의 비극, 곧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김구 등 건국 1세대 인물들에 대한 저자 특유의 분석도 엿볼 수 있다. 민중적인 지지 기반이 취약해 민중 봉기나 지지를 통한 국가 건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김구는 윤봉길이나 이봉창 의사 등과 같이 순교자적 희생정신으로 무장된 개별 투사의 역할을 중시했단 설명이다. 저자는 의열 투쟁과 테러리즘이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지 않다는 다소 파격적인 주장도 내놓는다.
이승만에 대해서도 나름의 해석을 내놓는다. 영화 '건국전쟁' 속 "이승만이 민주주의자였기 때문에 혁명이 일어났다"는 대사에 대해 저자는 "역사의 평가가 그렇게 바뀐다면 수유리에 묻힌 150명의 영혼은 누가 위로할 수 있을까?"라며 반문한다. 모든 역사적 인물엔 과오와 공덕이 함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덕이 과오를 덮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