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소재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 사진=뉴스1
경기도 소재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 사진=뉴스1
의정갈등이 길어지면서 전공의들의 업무 공백이 계속되고 있다. 이 가운데 최일선에서 환자를 받는 응급실을 붕괴하기 일보 직전이다. 일각에선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정부는 인건비와 수가를 인상해 응급실이 파행하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빅5' 병원 등 서울시내 주요 응급실 대부분은 지난 2월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이후 지속되는 인력난으로 파행을 겪고 있다.

이날 오전 서울대병원 응급실은 정규 시간 외 안과 응급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알렸고, 세브란스병원은 성인·소아 외상 환자 등을 수용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은 인력 부족으로 정형외과 응급 수술과 입원이 불가하고,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은 혈액내과 신규 환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의대 증원을 거부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이후 응급실 진료 제한은 일상이 됐지만 사태가 길어지면서 상황이 버티기 어려운 수준으로 악화하고 있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아주대병원 응급실에 근무하던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당초 14명이었으나, 의정 갈등 속에서 이 중 3명의 사직서가 수리됐다. 최근에는 남은 이들 중 4명이 사직서를 냈다. 건국대 충주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 7명 전원도 최근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도 심상치 않다. 서울 서남권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이화여대목동병원에서도 응급실 당직 근무 시 전문의 한명이 맡아야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현장에선 국내 응급의료체계의 붕괴는 이미 시작됐다거나, 지난 2월 이전으로는 절대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고질적 저수가와 형사소송 부담 등으로 인해 응급실 인력은 늘 부족한 상태였는데, 현 사태를 계기로 붕괴가 앞당겨졌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정부는 응급의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현장 의료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경증 환자의 지역 병의원 이용을 유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먼저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를 가산하고 권역·지역 응급의료센터의 전담 인력에 대한 인건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추석 연휴에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응급진찰료 수가 가산을 기존 응급의료기관 408개에서 응급의료시설로 확대 적용해 경증 환자를 분산할 방침이다. 또 경증 환자가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내원 시 본인 부담분을 기존 50∼60%에서 90%로 상향할 예정이다.

의료계에서는 정부 정책의 방향성에 공감하면서도 아직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대한응급의학회는 "경증·비응급 환자의 본인 부담 상향, 중증 응급환자와 야간 진료에 대한 보상 강화 등 정부 대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응급의료의 어려움 속에서야 발표된 것은 만시지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경증 환자의 본인 부담을 대폭 상향하겠다는 정부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있어서다.

의료계는 응급의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수가 인상과 형사소송 면책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수가를 현재보다 5~10배를 올려 추가로 채용이 필요하다거나 응급치료에서 형사소송은 100% 면책 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