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 개막식때 시청 지붕위 발레리노가 선보인 기술, 탕 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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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단비의 발레의 열두 달
화제가 됐던 2024 파리올림픽 개막식에서 발레 애호가들 사이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무용수 기욤 디오프(Guillaume Diop, 2000~)가 파리 시청의 지붕 위에서 홀로 춤을 추는 장면이었다. 단순히 발레 무용수이기 때문이 아니라 지난해 내한 공연 <지젤>에서 한국 관객들과 큰 기쁨과 추억을 함께 나눴기 때문이다. 그는 이 내한 공연 후 커튼콜에서 깜짝 승급 발표를 통해 파리오페라발레단 최초로 흑인 에투알(수석무용수)이 되었다.
무용수가 공연을 통해 입지가 바뀐다면 운동선수는 경기를 통해서 그렇다. 사격의 김예지 선수, 탁구의 신유빈 선수, 펜싱의 오상욱 선수, 이번 올림픽에서도 수많은 선수들이 스타덤에 올랐다. 기욤 무용수도, 이 선수들도, 그들의 본질이 변한 것은 아닐 텐데 이쪽의 세계에서 저쪽의 세계로 자리가 옮겨졌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하루아침이지만 이 무용수와 선수들의 삶에서는 오랜 시간이 걸린 길이었을 것이다.
발레의 동작 중에는 이 모습처럼 이쪽에서 저쪽으로 몸을 옮겨주고, 발과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스텝이 있다. 탕 리에(temps lié)이다. 탕 리에는 무게중심이 되는 발로 바닥을 지그시 누르듯 내려놓고, 다른 쪽 발은 발끝을 푸앵트(포인트) 상태로 하고 다리를 쭉 펴서 몸의 앞쪽이나 뒤쪽, 혹은 옆쪽으로 내려놓고 시작한다. 이 상태에서 무게중심을 갖고 있던 다리를 플리에 해서 다른 쪽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즉, 무게중심과 몸의 중심축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시키는 동작이다. 언뜻 보기에는 몸을 옮기는 단순한 동작으로 보이지만, 이때 축이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골반과 코어를 단단하게 잡아야 하고, 위로 상승하는 에너지와 풀업(pull-up)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리는 동작이다.
▶▶▶[이전 칼럼] 무릎을 구부렸다 펴는 '플리에'...여기에 발레의 모든 게 녹아있다
탕 리에는 연결 동작이기 때문에 작품 안에서 메인 동작의 위상을 갖거나 관객의 눈에 크게 띄지는 않지만, 주요 동작을 선보이기 전에 준비 포즈로 유용하게 쓰인다. 특히 느리고 부드러운 느낌의 아다지오 장면에서 탕 리에는 무용수 몸의 선과 장면을 아름답게 만드는 비법이 되기도 한다.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 1904~1983)이 미국에서 초연한 신고전주의 발레 작품 <주얼스(Jewels, 1967)>의 1막 ‘에메랄드’를 실례로 들 수 있다.
‘에메랄드’는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é, 1845~1924)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éas et Mélisande, Op. 80)>의 프렐류드에 맞춰 춤을 추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의 음악의 빠르기는 콰지 아다지오(quasi adagio)이다. 이 느리고 부드러운 곡조에 맞춰 무대 중앙에는 남녀 무용수가 프로미나드를 펼치고, 그들을 둥글게 에워싼 여성 무용수들은 탕 리에를 한 후 춤추기 시작한다. 여기서 탕 리에는 춤의 호흡을 가다듬어, 이제 본격적인 춤사위가 펼쳐질 것을 알리는 일종의 예고가 되는 것이다. ▶▶▶[이전 칼럼] 슈베르트 '겨울나그네'와 발레의 '프로미나드'가 생각나는 계절
올림픽의 선수들을 보면서 화려하게 날아오르는 제떼(jeté) 동작이 생각날 법도 한데 의외로 가장 먼저 생각난 발레 동작은 조용하게 자신의 무게중심과 발을 옮기는 탕 리에였다. 기욤 무용수가 에투알이 되기까지, 운동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하기까지, 또 메달을 따기까지, 그들이 걸어온 길은 묵묵히 탕 리에 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자신의 위치와 자리를 옮겨 놓았다.
탕 리에가 일어난 후에는 이전과 다른 시간과 삶을 살게 되지만, 중요한 건 그 자리에서 멈춰 서지 않고 다시 시간과 시간을 연결하며 나아간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8월이 9월로 천천히 탕 리에 하고 있다. 이 계절에서 다음 계절로, 이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지금까지의 나에서 또 다른 나의 세계로, 우리 모두 느리지만 아름답고 정확하게 탕 리에 하는 가을이 되기를.
이단비 작가·<발레, 무도에의 권유> 저자
발레의 동작 중에는 이 모습처럼 이쪽에서 저쪽으로 몸을 옮겨주고, 발과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스텝이 있다. 탕 리에(temps lié)이다. 탕 리에는 무게중심이 되는 발로 바닥을 지그시 누르듯 내려놓고, 다른 쪽 발은 발끝을 푸앵트(포인트) 상태로 하고 다리를 쭉 펴서 몸의 앞쪽이나 뒤쪽, 혹은 옆쪽으로 내려놓고 시작한다. 이 상태에서 무게중심을 갖고 있던 다리를 플리에 해서 다른 쪽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즉, 무게중심과 몸의 중심축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시키는 동작이다. 언뜻 보기에는 몸을 옮기는 단순한 동작으로 보이지만, 이때 축이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골반과 코어를 단단하게 잡아야 하고, 위로 상승하는 에너지와 풀업(pull-up)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리는 동작이다.
▶▶▶[이전 칼럼] 무릎을 구부렸다 펴는 '플리에'...여기에 발레의 모든 게 녹아있다
탕 리에는 연결 동작이기 때문에 작품 안에서 메인 동작의 위상을 갖거나 관객의 눈에 크게 띄지는 않지만, 주요 동작을 선보이기 전에 준비 포즈로 유용하게 쓰인다. 특히 느리고 부드러운 느낌의 아다지오 장면에서 탕 리에는 무용수 몸의 선과 장면을 아름답게 만드는 비법이 되기도 한다.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 1904~1983)이 미국에서 초연한 신고전주의 발레 작품 <주얼스(Jewels, 1967)>의 1막 ‘에메랄드’를 실례로 들 수 있다.
‘에메랄드’는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é, 1845~1924)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éas et Mélisande, Op. 80)>의 프렐류드에 맞춰 춤을 추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의 음악의 빠르기는 콰지 아다지오(quasi adagio)이다. 이 느리고 부드러운 곡조에 맞춰 무대 중앙에는 남녀 무용수가 프로미나드를 펼치고, 그들을 둥글게 에워싼 여성 무용수들은 탕 리에를 한 후 춤추기 시작한다. 여기서 탕 리에는 춤의 호흡을 가다듬어, 이제 본격적인 춤사위가 펼쳐질 것을 알리는 일종의 예고가 되는 것이다. ▶▶▶[이전 칼럼] 슈베르트 '겨울나그네'와 발레의 '프로미나드'가 생각나는 계절
올림픽의 선수들을 보면서 화려하게 날아오르는 제떼(jeté) 동작이 생각날 법도 한데 의외로 가장 먼저 생각난 발레 동작은 조용하게 자신의 무게중심과 발을 옮기는 탕 리에였다. 기욤 무용수가 에투알이 되기까지, 운동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하기까지, 또 메달을 따기까지, 그들이 걸어온 길은 묵묵히 탕 리에 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자신의 위치와 자리를 옮겨 놓았다.
탕 리에가 일어난 후에는 이전과 다른 시간과 삶을 살게 되지만, 중요한 건 그 자리에서 멈춰 서지 않고 다시 시간과 시간을 연결하며 나아간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8월이 9월로 천천히 탕 리에 하고 있다. 이 계절에서 다음 계절로, 이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지금까지의 나에서 또 다른 나의 세계로, 우리 모두 느리지만 아름답고 정확하게 탕 리에 하는 가을이 되기를.
이단비 작가·<발레, 무도에의 권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