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중해야 할 탄소배출권 유상할당
2026년부터 시작되는 배출권거래제 제4차 계획기간을 앞두고 관련 기업에 탄소배출권을 배정하는 방식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그동안 정부가 배출권을 관련 기업에 무상으로 할당해왔는데, 왜 오염할 권리를 무료로 나눠주냐는 비판에 부닥친 것이다. 이에 덧붙여 유럽의 유상할당 비중은 50% 이상이며 심지어 미국 동북부는 100%로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된 근거로 활용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주장은 무지의 소산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먼저 오염원에 돈을 받고 배출권을 파는 유상할당이 무상할당에 비해 기후변화 억제 효과가 우월하다는 증거가 없다. 물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오염원에 배출에 따른 금전적 부담을 가중하는 게 통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유상할당은 오염에 따른 기회비용을 증가시킬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가야 할 길처럼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기업들조차 이런 논리에 속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배출권거래제는 전체 오염 배출 총량만을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배출권을 공짜로 나눠주든, 경매로 대가를 받든지 간에 정해진 총량만큼 배출된다. 어떻게 나눠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유상할당한다고 해서 무상할당에 비해 온실가스가 줄어드는 게 아니다. 단지 차이점이라곤 대가를 받고 배출권을 나눠주면 정부가 돈을 벌고, 무상으로 나눠주면 그만큼 기업에 남는다는 것이다.

그뿐이다. 학부 수준 환경경제학 교과서에도 나오는 기본적인 사실이다. 그럼에도 소위 환경보호론자들은 기후변화 억제를 위한 노력 맨 앞에 유상할당 확대를 주창한다. 유상할당에 왜 집착하냐고 물으면 이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기후변화 관련 기술 투자 및 감축 사업의 재원으로 쓰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 기업의 돈을 걷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학술용어로 ‘세입재활용’(revenue recycling)이라고 한다. 납세자에게 돈을 내도록 해서 이를 다시 유사한 용도로 지출하는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의 주체가 기업에서 정부로 넘어가는 셈이다. 공공이 아닌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장려하는 현 정부의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

현재 일부 배출권을 경매로 매각해 마련하는 기후환경기금으로 연간 4000억~5000억원이 걷히고 있다. 향후 유상할당이 확대되면 기금 규모가 대대적으로 커질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지난 총선 때 일각에선 이를 보편적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쓰자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다.

이렇게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본래 취지인 기후변화 억제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정부가 기업들보다 온실가스 저감 사업을 더 잘할 거라는 보장도 없다.

우리 기업에 그런 불필요한 부담을 줄 바에야 차라리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하는 게 훨씬 친환경적이다. 무분별한 배출권 유상할당 확대는 별다른 실익 없이 기업만 괴롭히는 자학 행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