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정부 등이 최근 기준금리 동결을 비판한 데 대해 ‘단기적 관점’에 치중했다고 직격했다. 금리 인하를 어렵게 하는 구조적 요인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27일 서울대에서 열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한은 공동 심포지엄’ 폐회사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금리 동결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현 상황에서의 단기적 최적 결정’이 무엇인지에 치중했다는 점이 안타깝다”며 “왜 금리 인하를 망설여야 할 만큼 높은 가계부채 및 수도권 부동산 가격과 같은 구조적 문제에 빠지게 됐는지에 대한 성찰은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조적인 제약을 무시한 채 고통을 피하기 위한 방향으로 통화·재정정책을 시행한다면 부동산과 가계부채 문제가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의 발언은 지난 22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연 3.50%인 기준금리를 유지하기로 결정한 후 정부를 중심으로 나온 비판 목소리를 반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대통령실은 금통위 결정 이후 이례적으로 “아쉽다”고 밝혔고, 정부 주요 인사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총재는 “지금 고민하는 것은 왜 수도권 부동산 가격은 조그만 충격만 있어도 급등하는 구조가 형성됐는가 하는 문제”라며 “수도권 부동산 특히 서울 강남 부동산의 초과 수요가 상시 잠재해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수요의 근저에는 입시 경쟁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며 “교육열에서 파생된 끝없는 수요가 강남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고착화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총재는 “이번(8월 22일) 금통위 결정은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이번 정부가 지난 20년의 추세를 처음으로 바꿔주는 정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 총재는 “쉬운 재정·통화정책을 통해 임시방편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정작 꼭 필요하지만, 고통이 수반되는 구조조정은 미뤄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해 날 때 지붕을 고쳐야 한다’는 격언을 인용하면서 “더 안타까운 점은 이제 우리에게 해 날 때를 기다려 구조개혁을 추진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정부 정책이나 법 제도를 손대지 않더라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교수님들이 결단만 해주시면 큰 파급 효과를 일으키는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해선 “세계 최상위권 수준인 가계부채가 지나칠 정도로 증가하면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고, 높아진 수도권 부동산 가격은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