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사진=뉴스1
한국서 막힌 비트코인 기관 투자…국민연금은 이렇게 한다 [한경 코알라]
코인, 알고 투자하라!
한국경제신문의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코알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 발행하는 코알라를 받아보세요!
무료 구독신청 hankyung.com/newsletter


국민연금이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주식을 매입하며 비트코인 익스포저를 늘리고 있다. 가상자산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세계 수위권인 우리나라에는 왜 마이크로스트래티지 같은 기업이 없을까? 국민연금은 왜 국내 기업을 통해 비트코인을 살 수 없을까?

세계 1위 노르웨이 국부펀드, 비트코인 투자를 늘려

노르웨이 은행투자운영회(NBIM)가 운영하는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는 자산규모 세계 1위 국부펀드다. 북해에서 솟아나는 풍부한 석유와 가스 자원을 기반으로 부자 나라가 된 노르웨이의 부(富)를 관리하는 펀드가 바로 노르웨이 국부펀드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신고된 2분기 미국 증권보유신고서(13F)들이 공개되며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비트코인 보유량이 크게 증가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2022년 말 286비트코인, 2023년 말 1507비트코인을 보유했던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6개월 만인 2024년 6월 말 기준 2446개의 비트코인을 소유한 것이 밝혀졌다. 비트코인 한 개의 가치를 6만 달러로 어림잡으면 1억 5천만 달러 정도를 비트코인에 투자한 셈이며, 노르웨이 국민 1인당 27달러 정도의 비트코인을 소유한 것과 같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간접 투자를 통해 비트코인을 보유한다. 마이크로스트래티지(NASDAQ:MSTR), 마라톤디지털(NASDAQ:MARA), 코인베이스(NASDAQ:COIN), 블록(NYSE:SQ) 등 비트코인을 대량 보유한 기업들의 주식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비트코인에 투자한다. 이 가운데 특히 마이크로스트래티지가 비트코인 보유량을 늘리고,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주식 보유량을 늘리면서 비트코인 간접 보유량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도 비트코인 투자를 늘려

증권보유신고서(13F) 공개를 통해 함께 알려진 것은 대한민국 국민연금의 비트코인 투자 내역이다. 1조 원의 기금을 굴리며 우리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은 올해 2분기에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주식을 34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60억 원 매집했다. 국민연금도 노르웨이 국부펀드처럼 블록 주식을 약 6100만 달러(825억 원), 코인베이스 주식을 약 5100만 달러(690억 원) 보유 중이다. 두 회사는 2023년 말 기준 각각 8000비트코인, 9000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마이크로스트래티지 매집을 통해 확실해진 것 중 하나는 국민연금이 비트코인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인베이스나 블록의 경우 각각 가상자산 거래소 사업과 지급결제 사업 등을 진행하지만,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본업인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I)보다는 비트코인 보유량으로 유명한 기업이다.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2024년 2분기 말 총자산은 70억 달러 수준인데, 이 중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이 57억 달러로 80%를 상회한다. 비트코인 강경 지지론자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이클 세일러가 이끄는 이 회사는 전환사채로 자금을 확보하여 비트코인을 매수하는 등 비트코인을 사 모으는 데 전력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22만6500개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비트코인의 최대 발행량인 2100만 개의 1.08%에 달하는 수치이며, 미국 정부가 보유한 21만 개를 상회한다. 즉,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주식은 기술주라기보다는 비트코인을 기업의 주식 형태로 포장(wrapper)한 금융상품에 가깝다. 그러므로 국민연금의 마이크로스트래티지 매집은 코인베이스나 블록에 비해 더 ‘직접적인’ 비트코인 간접투자이며, 국민연금이 비트코인 익스포저를 늘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올해 1월 ‘국민연금은 왜 비트코인을 달러로 사야 하나’라는 글에서 “국민연금이 가상자산 투자를 결정한다면 국내 금융기관이 그 수요에 즉시 대응이 가능할까? 내부 의사 결정, 업무 프로세스 준비, 제반 시설 확보, 법적 준비까지 마치고 가상자산 투자상품을 국내에서 출시할 때까지 시장이 기다려 줄까?”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비트코인을 달러로 매집했고, 그 수단은 국내 금융기관이나 금융상품이 아닌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주식이었다.

K-MSTR을 만들 수 있었다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마이클 세일러는 2020년 8월부터 비트코인을 매집하기 시작했고, 같은 해 3월 10달러 내외를 맴돌던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주식은 올해 3월 200달러로 4년 만에 20배 성장했다.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현재 시가총액은 291.5억 달러로, 이베이(NASDAQ:EBAY, 288억 달러)를 상회하며 도이체방크(ETR:DBK, 291억 유로), 휴렛팩커드(NYSE:HPQ, 349억 달러) 등 세계적인 대기업들에 필적한다.

참으로 아쉬운 대목은 우리나라도 마이크로스트래티지와 같은 기업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비트코인에는 국경이 없고, 우리나라에는 노르웨이와 달리 규모 면에서 세계 수위를 다투는 가상자산 원화 유통시장이 있다. 마이크로스트래티지가 비트코인 매입을 시작한 2020년 8월에 가상자산 원화 시장은 규모 면에서 충분히 성숙한 시점이었다.

한국에 마이크로스트래티지가 나올 수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 정부의 규제다. 우리나라에는 2017년부터 금융기관의 가상자산 보유, 거래, 투자가 전면 금지되었고 2021년 특금법 시행과 함께 법인들은 가상자산을 원화로 거래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명문화되지 않은 그림자 규제다. 개인과 법인, 기관의 가상자산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충분했지만, 정부의 ‘차단 일변도’ 규제로 인해 법인과 기관은 가상자산 원화 시장에서 격리된 것이다.

국내 증시에 마이크로스트래티지와 유사한 기업이 있었다면 국민연금뿐 아니라 국내 개인 및 기관 투자자들, 더 나아가 외국인 투자자들도 투자할 수 있었다. 이는 국내 자본시장과 증권업계에 큰 반사이익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2017년의 ‘가상통화 관련 긴급 대책’은 그 모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미국 기업 주식이라는 도구를 통해, 해외 업체에 수수료를 납부하며, 환차손 리스크를 부담하며, 달러로 비트코인을 사고 있다. 국민연금이 460억 원을 투자한 마이크로스트래티지가 한 역할은 국내 기업 또는 금융기관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일이다. 국내 기업이 국민연금의 좋은 투자처가 되고, 국민연금은 우리 금융당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우리 자본시장에서 환차손 리스크 없이 원화로 안전하게 투자를 집행할 수 있었다. 2017년 긴급대책이 없었다면 말이다.

‘비트코인 우주전쟁’이 벌어진다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후보는 비트코인을 ‘전략비축물자(strategic stockpile)’를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신시아 루미스 상원의원은 현재 미국 정부가 보유한 비트코인 21만 개에 79만 개를 추가 매입해서 만든 100만 개를 20년간 보유하는 법안(BITCOIN Act)을 발의했다. 러시아는 이에 맞서 가상자산 채굴을 허용했고, 시장에는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 간 우주탐사 경쟁처럼 비트코인을 두고 강대국들이 경쟁하는 ‘비트코인 우주전쟁(bitcoin space war)’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위스콘신주 연기금(The State of Wisconsin Investment Board), 미시간주 연기금(The State of Michigan Retirement System), 저지시티 연기금(the municipal pension plan of Jersey City) 등도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비트코인 보유량을 늘리고 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나 대한민국 국민연금의 비트코인 투자도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각국의 개인과 기업은 물론, 금융기관, 연기금, 국부펀드까지 포트폴리오 다각화 및 위험대비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가상자산을 매입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4년마다 돌아오는 ‘대목’

2012년, 2016년, 2020년 모두 비트코인 반감기와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해다. 우연히도 세 해 모두 마지막 분기 동안 유의미한 가격 상승, 그리고 다음 해 연말까지 폭발적인 가격 상승이라는 패턴이 관측되었다.
한국서 막힌 비트코인 기관 투자…국민연금은 이렇게 한다 [한경 코알라]
24일 새벽 파월 미 연준 의장은 9월 금리 인하를 사실상 확언했고, 통화량 증가 임박은 기정사실이 돼 가고 있다. 올해는 2012년, 2016년, 2020년과 같이 비트코인 반감기와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고, 시장은 과거와 같은 패턴을 예상하고 있다. 또한 올해 초 미 증시에 비트코인 현물 ETF가 상장되며 비트코인에 대한 시장 접근성 및 세간의 인식 또한 크게 개선된 상태다.

미국 대선의 향방에 따라 변수가 있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역사상 가장 큰 가상자산 ‘대목’을 앞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규제 환경은 아직 2017년 ‘전면 금지’에 머물러 있다. 수많은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가상자산 투자와 관련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전면 금지’ 기조하에 숨죽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자본의 가상자산 투자수요는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시가총액에 보탬이 되고 있다. 이런 규제가 정녕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지 경각심이 필요하다.
김민승 코빗리서치센터장
김민승 코빗리서치센터장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센터장을 맡고 있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