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안세영과 공정거래위원회
배드민턴 선수 안세영은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런데 시상식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수상의 기쁨을 이야기하는 대신 배드민턴협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개선을 요구했다. 현재는 다소 잠잠해졌지만 우리 사회는 안세영의 인터뷰로 한동안 떠들썩했다.

안세영의 발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반응이 있었다. 대다수는 그녀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가 운동에만 전념하지 못하도록 만든 여러 관행과 부조리에 놀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해 달라는 요구를 올림픽 금메달 수상자 정도 되어야 할 수 있는 배드민턴협회 나아가 우리 사회의 경직성에 대한 자성도 있었다. 모두가 그녀의 행동에 호의적이지는 않았지만, 배드민턴계 나아가 체육계 전반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대세를 이뤘다.

이에 조응해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서둘러 배드민턴협회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국민의 궁금증과 분노에 대한 자연스러운 대응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것이 바람직한 대응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배드민턴협회는 민간단체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간 조직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정부가 정부보조금 외의 영역까지 깊숙이 조사하고 개입하는 것은 월권의 소지가 없지 않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감사라는 접근 방식이다. 감사란 불법적 행위를 찾아내 처벌하는 행위다. 문체부가 감사에 착수했다는 것은 이미 배드민턴협회의 잘못을 전제하고 이를 고치겠다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뜻이다. 안세영의 발언을 보면 배드민턴계에 여러 가지 부조리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가 궁극적으로 원한 것은 대화이지 협회의 비리 고발이 아니었다. 불행하게도 정부는 감사라는 행위의 속성 때문에 협회의 예산 전용 같은 비리 문제를 저인망식으로 파고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협회는 문제를 직시하고 대화에 나서기보다는 조금이라도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움츠리고 수세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안세영은 무슨 대화를 원한 것일까? 핵심은 적절한 수익 배분에 관한 협의였다. 세계적 스타인 그녀는 후원사를 잘 골라 자신에게 적합한 운동화나 라켓을 사용하면서 풍부한 금전적 지원을 받고 운동에 전념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협회는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후원 계약을 맺는 것을 금지했다. 협회가 일괄적으로 계약을 체결한 뒤 거기서 생기는 수익 중 상당 부분을 협회 운영이나 유소년 선수 육성 등에 활용했다. 이런 문제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사자 간 협의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협회와 선수 간에는 힘의 불균형이 존재해 대등한 논의가 매우 어렵다. 안세영이 협회가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한 태도로 임할 것을 요구하고자 자신의 협상력이 가장 높아진 시점을 활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제반 상황을 고려할 때 나는 다소 늦었지만, 문체부 대신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문제를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배드민턴협회는 국가대표 선발 등 많은 영역에 대해 독점력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선수와 회원들은 부당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협회의 요구를 모두 따라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가지 이유로 협회를 복수로 만들고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면, 독점력을 가진 협회가 규정이라는 일방적 방식으로 선수들과 맺는 계약이 적절한지 여부를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계약이라는 관점에서 협회와 선수 간 협의를 촉진하는 경험이 축적된다면 다른 체육단체들에 존재할 수 있는 유사한 문제의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많은 영역에서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 왔다. 스포츠계도 마찬가지였고, 엘리트 체육의 경우는 더더욱 그랬다. 그러다 보니 협회가 선수와 동호인의 자율적 모임보다는 문체부의 산하 조직처럼 여겨지고 정부, 협회, 선수는 수직적 관계로 인식되고 움직이는 경향이 강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은 선수, 협회, 정부 간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안세영의 용기 있는 발언에 대해 정부가 감사라는 일방적이고 구태의연한 방식이 아니라 당사자 간 협상의 촉진이라는 보다 발전적인 방식으로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