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길 닦은 '테크노크라트 거목' 떠나다
197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주도하며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초석을 놓은 최각규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2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강원 강릉 출신인 최 전 부총리는 장관과 국회의원, 광역지방자치단체장(강원지사),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두루 거쳤다. 경제기획원을 비롯해 농수산부, 상공부 등 정부 부처 장관만 세 차례 역임했다. 산업화를 통한 고도 성장을 기획하고 주도한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 집단의 ‘마지막 거목’으로 평가된다.

강릉상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그는 1956년 고등고시 행정과(7회)에 합격해 재무부 예산국 사무관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재무부에서 관세국장과 국고국장, 차관보 및 차관을 역임했다. 1974년엔 경제기획원 차관으로 임명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주도하며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책에 깊숙이 관여했다. 1975년 농수산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임명된 데 이어 1977년부터 1979년까지는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1977년 중소상공인의 반발에도 부가가치세 도입을 적극 추진하는 뚝심을 보였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 한비 사장, 한양화학 사장, 석유협회 회장 등 산업 현장에서도 경영 능력을 발휘했다.

1988년 13대 총선 때 고향인 강릉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사무총장까지 지냈다. 1990년 민정당과 민주당, 공화당 등 3당 통합 후 집권 여당인 민자당 정책위 의장을 맡았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내면서 노태우 정부 후반기 경제 정책을 진두지휘했다.

1994년 강릉대 객원교수, 1995년에는 자민련 부총재를 지냈다. 1995년 7월부터 1998년 6월까지 강원지사직을 수행했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후 직선제를 통해 당선된 첫 민선 강원지사다. 자민련 소속으로 강원지사에 당선된 그는 야당 지사의 한계를 느껴 1998년 6월 탈당, 무소속으로 있다가 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1998년 강릉 국회의원 재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2000년 1월에는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해 강릉지구당위원장과 상임고문을 지냈다. 2001년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을 끝으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현진그룹 경영고문 등을 지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31일 오전 7시,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 가족묘원이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