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석 칼럼] '연소득 2억'도 국가장학금 줘야 하나
명문대 총장을 지낸 분이 사석에서 “대학 등록금이 영어 유치원비보다 싸다. 대학 교육이 제대로 되겠느냐”고 탄식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서울에서 웬만한 영어 유치원에 다니려면 월 150만원 이상, 1년에 2000만원 안팎이 드는데 대학 등록금은 비싸야 1년에 1000만원 남짓인 게 과연 정상이냐는 것이다. 그는 “미국 대학 교수가 ‘뉴욕 1년 주차요금보다 등록금이 싼데 어떻게 학생을 가르치느냐’고 해 말문이 막혔다”고도 했다.

정부가 내년에 국가장학금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떠오른 얘기다. 국가장학금은 소득 수준을 1~10구간으로 나눠 8구간 이하 가구 학생들에게 연 350만~570만원을 지급한다. 현재 전체 대학생 203만 명 중 100만 명가량이 대상이다. 내년엔 소득 9구간, 전체 대학생의 75% 수준까지 확대하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9구간 지원금은 연 100만~200만원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가구 기준을 중위소득의 200%에서 30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소득과 재산을 합쳐 환산한 월소득 인정액으로 보면 4인 가구 기준 1146만원에서 1719만원으로 높아진다. 연간으로 따지면 소득인정액 2억원이 넘어도 국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부동산, 차량 등 재산을 제외하고 소득만 보면 이보다 적겠지만 그래도 고소득층까지 국가장학금 대상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올해 총선 직전 대통령 주재 민생 토론회에서 교육부가 꺼낸 방안인데, 기획재정부가 내년 예산안에 이를 그대로 반영했다.

정부는 “더 많은 학생이 학자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따져볼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공정성 논란. 대학에 안 가는 학생도 많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지난해 73%였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국가가 장학금을 지원하는 건 좋다. 여건만 된다면 지금보다 더 줘도 된다. 하지만 고소득층까지 세금으로 대학 등록금을 지원하는 게 옳은가.

나랏빚도 빼놓을 수 없다. 국가장학금 확대에 드는 예산만 한 해 3900억원에 달한다. 이 돈은 어떻게 마련하나. 결국 빚이다. 정부가 긴축한다고 하지만 내년에도 나랏빚이 81조원 늘어난다.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면서도 선심성 예산은 늘리는 꼴이다.

등록금 통제 문제도 얽혀 있다. 정부는 오랫동안 대학 등록금을 묶었다. 역시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국가장학금 확대와 대학 등록금 통제는 ‘동전의 양면’이다. 국가장학금을 늘릴수록 정부 부담이 늘어나니 정부로선 등록금 통제 고삐를 더 세게 쥐려는 유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문제는 대학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다시 사석에서 만난 전직 총장의 얘기. 과거엔 자기가 맡고 있던 대학의 교수 월급이 자매결연을 맺은 미국 대학과 비슷했는데 지금은 60%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해외에서 유명 교수를 초빙하는 게 너무 어렵다고 한다. 수도권 대학에서 창업을 가르치는 한 대학 교수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요즘 뜨는 인공지능(AI) 전문가를 해외에서 데려오고 싶어도 그들이 원하는 연봉을 맞춰줄 수 있는 대학이 거의 없단다. 그는 “대학 등록금이 17년째 동결되다 보니 교수 월급도 17년째 제자리인데 그사이 물가는 30%가량 올랐다”며 “월급을 30% 깎으면서 교육 혁신을 하라고 하면 누가 하겠느냐”고 했다.

대학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부메랑을 맞는 건 결국 학생들이다. 빚내서 세금으로 고소득층까지 장학금 몇 푼 더 주는 게 아니라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게 정부가 내놔야 할 진짜 청년 대책 아닐까. 과도한 등록금 통제를 푸는 게 그 시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