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금은 태풍만 아니라면 날씨가 흐려도 지붕을 고쳐야 하는 상황”이라며 구조개혁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제 서울대에서 열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한은 공동 심포지엄’에서다. 그러면서 “왜 금리 인하를 망설여야 할 만큼 높은 가계부채와 수도권 부동산 가격 같은 구조적 문제에 빠지게 됐는지에 대한 성찰은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한은의 금리 동결 결정 직후 대통령실에서 이례적으로 “아쉽다”는 반응을 표시한 데 대한 작심 발언으로 읽힌다.

한은 총재가 ‘웬 구조조정 타령이냐’고 흘려들어선 안 된다. 거시경제가 인구 고령화와 산업 구조 등 비(非)경기적 요인에 좌우돼 금리 효과가 무력해지는 데 따른 통화정책 수장의 고언으로 곱씹어봐야 한다.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인 잠재성장률은 2001년만 해도 5.4%였지만, 그 후 줄곧 내리막을 걸어 지난해에는 1%대로 떨어졌다. 세계 최악 수준의 저출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인 노동생산성을 감안하면 2030년 이후 0%대로 추락하는 데 이어 2060년대에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진입할 것이란 전망이다. 장기 성장률을 높이려면 경제·사회 전반의 구조개혁을 통해 고비용 구조를 깨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그런데도 “손쉬운 재정·통화정책을 통해 임시방편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정작 꼭 필요하지만, 고통이 수반되는 구조조정은 미뤄왔다”는 이 총재의 진단은 적확하다. 노동·연금·교육 등 윤석열 정부의 3대 핵심 개혁 과제조차 이익집단의 반발과 정치권의 무능으로 진전을 보지 못하는 상태다. 이대로라면 중진국으로 다시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이 총재는 “우리에게 해 날 때를 기다려 구조조정을 할 여유가 없다”며 “단기 경제정책과 구조개혁을 함께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늘 국정 브리핑을 통해 연금·의료·교육·노동 등 4대 개혁에 저출생 대응을 더한 ‘4+1 개혁’ 구상을 밝힌다. 한은의 고언에 화답해 지지부진한 구조개혁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전기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