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춤사위의 대변신 '행+-'… 더하거나 뺄 나위가 없었다
'전통이 어렵다'는 말은 고전과 현대를 맥락없이 붙여놨을 때 습관처럼 튀어나온다. 한국 무용이 이해하기 어려워보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소복같은 의상과 처연하고 느린 동작들이 요즘 생활상과 도통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국립무용단의 새 시즌 레퍼토리 첫 작품에서는 전통 해체의 셈법을 제시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무용 <행 플러스 마이너스(+-)>는 유교적 그물망에 꽁꽁 묶여있던 무용수 43명을 하나씩 꺼내며 관객에게 '쇼생크 탈출'급 희열을 안겨준다. 한국 무용이 어렵게만 다뤄야할 과거의 유물이 아님을 여실히 입증해줬다. 무대는 각자의 몸짓에 충실한 무용수들을 통해 "우리가 전통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지속적인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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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되는 이 작품은 '한국적 컨템퍼러리 무용의 선두주자'라는 안무가 안애순 씨가 진두지휘했다. 안 씨는 이번 작품에서 한국 고유의 순환적인 움직임(맺고 어르고 푸는 동작들)을 현대무용 기법에 녹여내 한국 춤의 고정관념을 부숴버렸다.
한국 전통 춤사위의 대변신 '행+-'… 더하거나 뺄 나위가 없었다
1막에서는 작은 정사각형의 화문석 위에서 추던 궁중독무 '춘앵무'를 모티프로 한 춤이 펼쳐졌다. 모두 하얀 옷을 입은 단원들이 정렬해 같은 움직임을 이어가다 서서히 행과 열을 바꾸어가며, 또 팔의 높낮이를 다르게 하면서 잔잔한 해체를 보여준다. 무용수들은 탑을 오르는 것처럼 계속 걸어오르는 발동작으로, 전통에서 현대로 서서히 시간의 나침반을 변경해 나아갔다.
한국 전통 춤사위의 대변신 '행+-'… 더하거나 뺄 나위가 없었다
춘앵무와 꾀꼬리 소리가 어우러진 조화로운 1막이 끝나면서 무대는 대전환을 이룬다. 1막과 2막을 매개하면서 한 소리꾼이 나온다. 꾀꼬리가 인간으로 변한 것인양 소리꾼이 고운 소리로 곡조를 뽑아낸 직후 디지털 음악의 비트가 흘러나왔다. 하나 둘씩 나타난 무용수들이 어느새 무대를 누비고 있었다. 무대 주변에 설치된 거대한 기둥들에 맺혀진 무용수들의 그림자도 너울너울 춤을 췄다. 무용수들은 가득한 생명력을 머금은 채 맨발로 뛰고 구르며 가로와 세로가 아닌 대각선 방향의 무수한 새로운 선(線)들을 그려나갔다.
한국 전통 춤사위의 대변신 '행+-'… 더하거나 뺄 나위가 없었다
다만 그것이 제멋대로 흘러가는 움직임이었다면 관객들의 시선을 끝까지 붙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국립무용단원들은 각자의 동작을 선보이면서도 서로 원을 그리고, 동작을 주거니 받거니하는 등 서로를 의식해 합일을 이뤄나갔다.

2막은 과거라는 공간에 고이 간직해온 전통을 꺼내 현시대를 살아가는 무용수들의 몸에 이식하는 과정처럼 보였다. 무용수들은 수없이 공부하고 몸으로 익혔을 전통 무용의 기억과 그 기억을 현재에 새롭게 탄생시키는 의식을 이어나갔다.
한국 전통 춤사위의 대변신 '행+-'… 더하거나 뺄 나위가 없었다
무대 연출과 의상도 본 공연의 백미다. 입체적인 기둥에 맺힌 무용수들의 그림자는 각각 떨어져 있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마치 바로 옆에서 움직이는 2인무나 3인무처럼 보여지게 만드는 착시 효과를 주며 관객의 시각을 자극했다.

하얀 바탕을 기본으로 해 형광빛의 네온 컬러를 채용한 무대 의상도 몸의 움직임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공신이었다. 형광 보라색과 형광 민트색, 형광 다홍과 파랑 등 보색의 대비가 하얀 바탕 위에 적절히 이뤄지는 것을 보며 한국의 조각보가 연상됐다.

전통의 규범으로부터 뚜벅뚜벅 걸어나와 이를 토대로 자신만의 방식을 생성해낸 국립무용단의 이번 공연은, 온고이지신이라는 말 뜻의 참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