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계획대로 2026년 ‘스코프3’ 공시 제도를 도입하면 30대 그룹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향후 4년간 수조원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왔다. 스코프3는 협력업체를 비롯해 제품 생산 과정과 사용·폐기 단계에서 나오는 모든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정해 발표하는 공시 제도다. 세계 곳곳에 있는 납품업체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하나하나 측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에서 스코프3 공시 의무화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코프3 도입하면 비용 부담 수조원

'탄소 공시' 의무화땐, 기업 천문학적 비용 든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8일 이런 내용을 담은 ‘스코프3 배출량 공시 관련 기업 애로사항’ 의견서를 관련 실무를 맡고 있는 한국회계기준원에 제출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말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초안’을 발표하면서 2026년 이후 스코프3 의무 도입 계획을 내놨다. 구체적인 기준과 의무화 시기는 연말께 확정한다.

이에 경총이 30대 그룹 산하 215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배출량 공시를 위한 준비 작업에만 기업별로 4년간 120억원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원재료별 전과정평가(LCA) 데이터 수집에는 기업별로 최대 600억원이 든다. 여기에 제품마다 수천만원이 드는 제3자 검증 비용이 추가된다.

손석호 경총 사회정책팀장은 “30대 그룹 산하 215개 상장사가 부담해야 할 비용만 4년간 수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2500개가 넘는 모든 상장사로 확대하면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전자제품, 배터리, 석유화학 등 수출기업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조사됐다. 주요 부품을 받는 중국 동남아시아 인도 중남미 기업들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인프라가 취약한 데다 데이터 신뢰도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한 대기업의 ESG 담당 임원은 “동남아·중남미 협력사에서 믿을 수 있는 온실가스 배출량 데이터를 얻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소송 리스크까지

부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해 스코프3를 측정하면 오히려 소송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시된 온실가스 배출량에 변화가 있을 경우 탄소 크레디트 구매 비용 등 재무적인 영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LSE) 그랜텀 기후변화 및 환경 연구소에 따르면 2015년 파리 기후협약 이후 세계 각국에서 기업을 대상으로 제기된 기후변화 관련 소송은 233건에 이른다. 이 중 60%(140건)는 기업이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서 거짓으로 홍보했다는 ‘그린 워싱’ 소송인 것으로 조사됐다.

상당수 기업은 유럽연합(EU)의 지침에 따라 스코프3를 의무 도입하는 것 자체에 반발하고 있다. 글로벌 빅2인 미국과 중국이 스코프3를 공시 항목에서 제외하거나 선택사항으로 기업에 일임했기 때문이다.

■ 스코프3(Scope3)

기업이 제품 생산 과정과 사용·폐기 단계, 협력업체 유통망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정해 공시하는 제도. 정부는 2026년부터 스코프3 의무 공시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