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PRO] 직원 횡령에 상장폐지까지…피눈물 흘리는 소액주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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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피도 내부 횡령 직원 3시간 만에 잡혔지만
6000여명 소액주주들 거래정지로 두 달 넘게 발 동동

매년 늘어나는 횡령·배임…올 들어서만 13개사 공시
거래정지 기간 지나치게 길단 지적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횡령범은 3시간 만에 붙잡혔는데, 내 주식은…"

직장인 김모(39)씨는 코스닥 상장사 비피도에 투자한 돈 수천만원을 두 달째 한 푼도 못 찾고 있다. 지난 6월 내부 직원의 횡령 사건이 발생한 비피도가 코스닥 상장 규정에 따라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에 올라 현재 주식 거래가 정지됐다. 김씨처럼 투자금이 묶인 비피도 소액주주 수는 6000명을 넘는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내부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한 상장사는 총 13곳이다. 이들 상장사의 횡령·배임 금액만 약 1200억원에 달한다. 이중 횡령·배임 혐의로 거래가 정지됐던 종목은 아진산업(횡령·배임 금액 148억원)과 비피도(81억원) 2곳이다. 아진산업은 지난 2월 21일부터 거래가 재개됐으나 비피도는 두 달 넘게 거래 정지 중이다. 절반 이상의 상장사들은 내부 횡령·배임 공시 전부터 주권 매매가 정지돼 있었다.

내부 횡령·배임 사건이 보고되면 금액에 따라 해당 기업의 주식 거래가 정지될 수 있다. 횡령·배임 금액이 자기자본의 5%(자산총액이 2000억원 이상인 대기업의 경우 3%) 이상인 경우 해당된다. 임원이 횡령·배임한 경우 금액이 ‘자기자본의 3% 이상 또는 10억원 이상’이면 한국거래소는 기업심사위원회를 열어 이 기업에 대한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를 한다. 여기에서 개선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해당 기업은 상장폐지된다.

최근 몇 년 사이 상장사의 횡령·배임도 늘어나는 추세다. 2022년 12건에 불과하던 상장사의 횡령·배임 공시가 지난해 42건으로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올 들어 이달 28일까진 공시된 횡령·배임 건은 이미 24건에 달한다.

소액주주들은 투자금이 꼼짝없이 묶인 채 한국거래소가 상장 폐지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한다. 거래소의 심사가 길어지면 주식 매매 정지에 따른 피해는 오롯이 소액주주들의 몫이란 지적이 나온다.

횡령 금액이나 회수 여부에 따라 곧바로 거래 재개가 될 수 있다. 경영진 횡령 같은 문제가 불거질 경우 일단 주식거래를 정지하지만 회사가 그 내용을 충실히 공시하면 바로 정지가 풀린다.

하지만 거래소의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가 길게는 2~3년까지 걸릴 수도 있다. 지난해 5월 김영준 회장 등 경영진의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하자 주식 매매가 정지된 이그룹(옛 이화그룹)이 대표적이다. 이화전기를 비롯해 이트론이아이디는 1년 넘게 거래 정지 중이다.

일각에선 주식 거래정지가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부 횡령·배임 사건의 경우 소액주주들이 알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차라리 주식 거래를 허용하면서 투자자가 판단할 기회를 줘야 하다는 설명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수년간 거래를 막아 놓으면 목돈을 투자한 개인들의 고통이 너무 크다"면서 "거래정지보단 내부통제가 미흡한 회사에 강한 페널티 부여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은혁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