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루인형을 고르는 시민들. /사진=김영리 기자
모루인형을 고르는 시민들. /사진=김영리 기자
"저렴하다는 생각에 막 담다 보니 10만원 넘게 썼어요. 그래도 온라인에서 완제품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해요.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있어 만족감도 크고요."

29일 정오 동대문종합시장 A·B동 5층 액세서리 부자재 상가 입구. '모루인형 키링(열쇠고리)'을 직접 만들고 싶어 이곳을 찾았다는 20대 정모 씨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친구들이 부탁한 것도 구매하느라 돈을 많이 썼다"면서도 "완제품으로 같은 양을 사려면 (돈을) 2배는 더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형, 팔찌 재료 등 액세서리 부자재를 판매하는 동대문종합시장 5층 상가 일대가 코로나19 이후 호황을 맞은 분위기다. '가꾸(가방 꾸미기)', '신꾸(신발 꾸미기)' 등 이른바 'O꾸' 열풍이 이어지면서다. '키링'이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가운데, 특히 현장에서는 '모루인형 키링'의 인기가 포착됐다. 인형을 원하는 모양으로 직접 만들 수 있어 '경험 소비' 트렌드와도 맞물렸다는 분석이다.

키링 사러 평일 낮에도 '북적'

모루인형들. /사진=김영리 기자
모루인형들. /사진=김영리 기자
모루인형이란 털이 달린 철사인 '모루'를 이용해 인형의 형태를 만든 뒤, 거기에 옷을 입히거나 안경을 씌우고 고리를 달아 만든 손바닥 크기의 키링이다. 1m 남짓의 모루 1줄이 800원인데, 이걸로 인형 1개를 만들 수 있다. 여기에 300~3000원 사이의 옷, 안경 등 다양한 부자재를 조합해 키링을 완성하면 된다. 1만원 안팎으로 인형 1개를 만들 수 있는데, 완제품은 1만5000~2만원대에 팔린다.

의류 원단, 단추, 침구 등을 판매하는 동대문종합시장 1~4층은 비교적 한산했지만 5층에 올라가니 평일 낮 시간대에도 손님들이 바글바글했다. 손님과 상인들이 좁은 복도를 이리저리 지나가며 분주한 모습이 연출됐다. 액세서리 상가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건 '모루인형 키링'용 부자재였다.
동대문종합시장 5층 상가 일대. /사진=김영리 기자
동대문종합시장 5층 상가 일대. /사진=김영리 기자
가게 매대에서 모루, 인형 눈, 옷 등을 신중하게 고르던 30대 김모 씨는 "가방에 달 키링을 직접 만들고 싶어 왔다"며 "어느 가게에 부자재가 많은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소문나 있을 정도로 모루인형 키링이 인기"라고 전했다.

모루인형 키링 2개 분량의 재료를 1만7000원에 샀다는 이모 씨(37)는 "유치원생 딸의 심부름으로 경기 용인에서 왔다"며 "와보니 구경거리가 많아 다음에 자녀와 또 들러볼 계획"이라고 전했다.

"7할이 소매 고객, 미·일서도 주문"

모루와 부자재들. /사진=김영리 기자
모루와 부자재들. /사진=김영리 기자
이곳 상인들은 유행에 맞춰 액세서리 부자재들을 들여와 판매한다. 30년째 동대문에서 도소매 액세서리 가게 '하이그린'을 30년 넘게 운영하는 배용국(65) 씨는 "지난해부터 모루인형 재료를 본격적으로 판매했다"며 "보통 유행하는 상품일수록 소매 손님이 많은데, 모루인형을 사러 오시는 분 중 70%가 소매 고객"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교 등 교육 기관에서의 단체 주문도 더러 있고, 올해부터는 일본 도쿄 하라주쿠의 액세서리 로드숍(길거리 가게)이나 미국에서도 주문이 들어온다"며 "K팝 아이돌들이 가방에 키링을 단 모습들이 SNS로 퍼지면서, 해외에서도 연락이 오는 것"이라며 분위기를 전했다.

10년째 '프렌즈' 액세서리 매장을 운영한다는 김성자(50) 씨는 "모루인형을 보면 어렸을 때 하던 종이인형 옷 입히기가 생각난다"면서 "코로나19 시기에는 마스크 줄이나 휴대폰 케이스, 슬라임 정도가 완제품 형태로 팔렸는데 요즘에는 소비자들이 재료를 직접 사가서 만들어보는 과정까지 유행의 일부가 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사회적 거리두기로 매출이 주춤했었는데 2~3년 전부터 키링이 유행하면서 시장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회복됐다"고 말했다.

'○꾸' 열풍 계속된다

/사진=김영리 기자
/사진=김영리 기자
이날 키워드 분석 서비스 썸트렌드에 따르면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8일까지 한 달간 온라인상에서 '모루인형' 관련 검색량은 지난해 동기 대비 908.2% 증가했다.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모루인형 키링' 등으로 올라온 관련 게시물 수도 10만3000건을 넘어섰다.

모루인형뿐만 아니라 키링 등 액세서리 매출은 산업 전반에서도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패션 플랫폼 W컨셉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키링 매출은 2022년 대비 405% 증가했다. 시장 규모가 5배 커진 셈이다. 이에 더해 올해 상반기에는 지난해 동기 대비 매출이 147% 늘어, 인기가 식지 않고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W컨셉 관계자는 "지난 2~3년 사이 키링 패션이 꾸준히 인기"라며 "키링의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가방을 넘어 휴대폰, 신발에도 액세서리를 붙이는 등 사용 범위가 넓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인형, 리본이 달린 키링 제품의 수요가 높다"며 "개인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한동안 키링 유행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