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AI 교과서 도입과 디지털 과잉
내년부터 초·중·고교에 도입되는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를 두고 교육당국과 학부모들의 찬반 논란이 뜨겁다. 교육부는 AI 활용 디지털 교과서를 내년 3월부터 영어 수학 국어(특수교육)에 우선 적용하고 2028년에는 사회 역사 등 전체 과목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올해 1조2000억원을 비롯해 매년 수조원대 교육예산을 투입한다. 전 세계에서 AI를 활용한 디지털 교과서를 교육 현장에 전면 적용하는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챗GPT 등 생성형 AI 붐은 디지털 교과서 전면 도입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학부모에게 교과서 전면 디지털화가 마냥 반가운 소식은 아닌 듯하다. 교육부의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유보에 관한 청원은 지난 5월 28일 처음 올라온 지 1주일 만에 요건인 5만 명을 넘겨 국회 교육위원회에 정식 안건으로 회부됐다. 청원인은 “이미 수년 동안 학부모들은 자녀의 과도한 스마트기기 사용으로 이전에 없던 가정불화를 거의 매일 겪으며 살아가고 있으며 단지 ‘우리 가정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위안 아닌 위안으로 삼아 자포자기 심정으로 스마트기기들과 위험한 동거를 지속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교과서 전면 도입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묻고 있다.

서울교육청이 2022년부터 중학교 1학년에게 보급한 ‘디벗’(디지털+벗)패드 정책의 부작용도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대한 반감을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연 1784억원이 들어간 디벗 정책은 학생 한 명당 한 개의 디지털 디바이스를 제공해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몰래 게임, 유튜브, SNS에 접근하는 수단으로 이용돼 학부모들의 반발을 샀다.

AI 시대에 교육현장의 디지털화는 피해 갈 수 없는 여정이겠지만 학부모의 우려를 마냥 기우로만 치부할 수 없다. 산업화 시대의 부모가 청소년 시기에 경험한 초기 인터넷 공간과 지금 우리 아이들이 노출된 디지털 환경은 완전히 다른 행성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올해 출간돼 미국에서 큰 화제를 낳은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화이트의 <불안 세대>에 따르면 2010년을 기점으로 주요 선진국 청소년들은 유례없는 정서적 불안정기를 겪고 있다. 2010년은 전면 카메라를 장착한 아이폰4와 이에 최적화한 SNS 인스타그램이 출현한 시점이다. 자기과시적 사이버 세상의 등장과 알고리즘으로 청소년을 끊임없이 유혹하는 디지털 메커니즘이 봇물처럼 터진 기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2010년대 미국 10대 우울증 환자는 2000년대에 비해 여자는 145%, 남자는 16% 증가하고 자살률은 남녀가 각각 91%, 167% 폭증했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호주 캐나다 북유럽 등 주요 선진국 10대에게 2010년을 기점으로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정서·심리적 집단 병리 현상이 발생했다고 분석한다. 한국의 사례를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10대 우울증 환자는 2017년 대비 무려 90.2% 급증했다. Z세대의 10대들은 스마트폰 중독으로 사회성 결여, 주의력 결핍, 만성적 수면 부족, 중독 등의 공통 현상을 보이며 이전 세대 10대들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16세 이전 SNS 계정 금지, 중학교 스마트폰 사용 금지 등의 대안에는 현실적 제약이 적지 않지만 가장 뼈아프게 다가오는 부분은 “안전벨트, 흡연 등 오프라인 위험에 대해서는 아이들을 과잉 보호하는 부모들이 정작 가장 위험한 사이버 세상에서는 과소 보호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내년 디지털 교과서 전면 시행에 앞서 교육당국이 학부모들의 디지털 과잉 우려를 불식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