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적 창업자들이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던 회사, 페이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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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설계자들>
'실리콘밸리 전설의 시작'...페이팔 창업 이야기
지미 소니 지음
박세연·임상훈 옮김
위즈덤하우스
672쪽|3만6000원
'실리콘밸리 전설의 시작'...페이팔 창업 이야기
지미 소니 지음
박세연·임상훈 옮김
위즈덤하우스
672쪽|3만6000원
지금 우리가 아는 미국 실리콘밸리는 1957년 설립된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시작됐다. 핵심 멤버였던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는 퇴사 후 인텔을, 유진 클라이너는 ‘클라이너 퍼킨스’라는 훗날 구글 등에 투자한 벤처캐피털(VC)을 세웠다. 다른 멤버들도 실리콘밸리 곳곳에서 주축으로 활동했다.
1998년 설립된 페이팔은 페어차일드와 비견된다. ‘페이팔 마피아’라 불리는 페이팔 멤버들은 테슬라와 스페이스X(일론 머스크), 링크트인(리드 호프먼), 팔란티어(피터 틸), 어펌 홀딩스(맥스 레브친), 유튜브(스티브 첸), 옐프(제레미 스토플먼) 등을 세웠다. 지금도 실리콘밸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논픽션 작가 지미 소니가 쓴 <부의 설계자들>은 그 페이팔이 어떻게 태동했고, 성공했는지 속속들이 파헤친다. 페이팔이 이제는 존재감이 약하다고, 30년이 다 되어가는 옛날 이야기를 왜 꺼내냐고, 혹은 페이팔 마피아 이야기는 식상하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묘미는 디테일에 있다. 수백 건의 인터뷰와 수십만 장에 달하는 방대한 내부 문건을 토대로 당시의 일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2010년 영화 ‘소셜 네트워크’처럼 내밀하고 생생한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의 이야기는 긴장감 있고, 강렬하고, 매혹적이다.
페이팔의 이름은 원래 필드링크였고, 나중에 콘피니티로 바뀌었다. 피터 틸과 마크 레브친이 공동 설립한 회사였다. 경매 웹사이트 이베이를 고객으로 확보하고, 온라인에서 결제 편의성을 높이려 했다. 그런 일을 하는 유일한 기업은 아니었다. 첫 번째 스타트업을 막 팔아치운 일론 머스크가 이메일 송금을 가능하게 하는 기업 X.com을 차렸다. 단 하나의 문자 X로 이루어진 금융 웹사이트를 세워, 모든 금융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전 세계 금융을 지배하려 했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콘피티니와 X.com은 결국 합병해 페이팔이 됐다. 2년 뒤에는 나스닥에 상장했다. 책은 “당시 직원들은 회사를 극한의 창의성과 경쟁 열기로 가득 찬 용광로 같은 장소로 기억하고 있다”고 전한다. 사무실 한구석에 타이레놀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어떤 칸막이에선 한 직원이 남편을 윽박질렀다.
“잘 들어요. 오늘 밤 집에 가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그만 물어봐요!” 저자가 만난 이전 페이팔 직원들은 당시를 여전히 그리워한다. “뭔가 거창한 것, 살면서 이제껏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의 일부가 되는 느낌이었어요.”
틸과 머스크 등의 초창기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 머스크는 종잡을 수 없는 괴팍함으로 유명하지만, 당시는 품위 있고 관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머스크는 첫 번째 아내와 신혼여행을 가 있는 동안 페이팔 최고경영자(CEO)에서 축출됐다. 그런데도 침착하고 품위있게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쿠데타를 지휘한 틸을 칭찬하기도 했다. 그 인연은 틸이 훗날 머스크가 어려울 때 스페이스X에 투자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책이 주목하는 것은 한 명의 한 명의 천재적인 창업가가 아니다. 창의적이고 열성적인 인물들이 한곳에 모여들었을 때 발산하는 분위기에 주목한다. 쟁쟁한 인물들이 모여 트랜지스터, 정보이론, 유닉스, C언어 등을 만들어냈던 전성기의 벨 연구소처럼 당시 페이팔에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장(scene)과 천재성(genius)을 합성해 ‘시니어스’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개별적인 천재들이 아니라, 특정한 환경이나 집단 안에서 협력과 상호작용을 통해 창의성과 혁신이 발전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책은 그 마법 같은 시기의 페이팔을 흥미진진하게 전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1998년 설립된 페이팔은 페어차일드와 비견된다. ‘페이팔 마피아’라 불리는 페이팔 멤버들은 테슬라와 스페이스X(일론 머스크), 링크트인(리드 호프먼), 팔란티어(피터 틸), 어펌 홀딩스(맥스 레브친), 유튜브(스티브 첸), 옐프(제레미 스토플먼) 등을 세웠다. 지금도 실리콘밸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논픽션 작가 지미 소니가 쓴 <부의 설계자들>은 그 페이팔이 어떻게 태동했고, 성공했는지 속속들이 파헤친다. 페이팔이 이제는 존재감이 약하다고, 30년이 다 되어가는 옛날 이야기를 왜 꺼내냐고, 혹은 페이팔 마피아 이야기는 식상하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묘미는 디테일에 있다. 수백 건의 인터뷰와 수십만 장에 달하는 방대한 내부 문건을 토대로 당시의 일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2010년 영화 ‘소셜 네트워크’처럼 내밀하고 생생한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의 이야기는 긴장감 있고, 강렬하고, 매혹적이다.
페이팔의 이름은 원래 필드링크였고, 나중에 콘피니티로 바뀌었다. 피터 틸과 마크 레브친이 공동 설립한 회사였다. 경매 웹사이트 이베이를 고객으로 확보하고, 온라인에서 결제 편의성을 높이려 했다. 그런 일을 하는 유일한 기업은 아니었다. 첫 번째 스타트업을 막 팔아치운 일론 머스크가 이메일 송금을 가능하게 하는 기업 X.com을 차렸다. 단 하나의 문자 X로 이루어진 금융 웹사이트를 세워, 모든 금융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전 세계 금융을 지배하려 했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콘피티니와 X.com은 결국 합병해 페이팔이 됐다. 2년 뒤에는 나스닥에 상장했다. 책은 “당시 직원들은 회사를 극한의 창의성과 경쟁 열기로 가득 찬 용광로 같은 장소로 기억하고 있다”고 전한다. 사무실 한구석에 타이레놀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어떤 칸막이에선 한 직원이 남편을 윽박질렀다.
“잘 들어요. 오늘 밤 집에 가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그만 물어봐요!” 저자가 만난 이전 페이팔 직원들은 당시를 여전히 그리워한다. “뭔가 거창한 것, 살면서 이제껏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의 일부가 되는 느낌이었어요.”
틸과 머스크 등의 초창기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 머스크는 종잡을 수 없는 괴팍함으로 유명하지만, 당시는 품위 있고 관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머스크는 첫 번째 아내와 신혼여행을 가 있는 동안 페이팔 최고경영자(CEO)에서 축출됐다. 그런데도 침착하고 품위있게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쿠데타를 지휘한 틸을 칭찬하기도 했다. 그 인연은 틸이 훗날 머스크가 어려울 때 스페이스X에 투자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책이 주목하는 것은 한 명의 한 명의 천재적인 창업가가 아니다. 창의적이고 열성적인 인물들이 한곳에 모여들었을 때 발산하는 분위기에 주목한다. 쟁쟁한 인물들이 모여 트랜지스터, 정보이론, 유닉스, C언어 등을 만들어냈던 전성기의 벨 연구소처럼 당시 페이팔에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장(scene)과 천재성(genius)을 합성해 ‘시니어스’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개별적인 천재들이 아니라, 특정한 환경이나 집단 안에서 협력과 상호작용을 통해 창의성과 혁신이 발전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책은 그 마법 같은 시기의 페이팔을 흥미진진하게 전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