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기후대응 부족은 국민 기본권 침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한국 경제가 당면한 문제들의 복잡다단성을 새삼 일깨웠다. 헌재는 청소년운동가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2031년 이후 감축목표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은 점을 환경권 침해로 판단했다. 환경권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지 않아 ‘과소보호 금지 원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헌재 결정은 네덜란드 독일 등지에서 불충분한 온실가스 감축에 잇따라 위헌 판정이 내려진 사례의 연장선상에 있다. 기후위기 정책의 위헌성에 대한 아시아 최초의 법적 판단인 만큼 정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를 회피하고 외면하는 태도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고 문제를 키울 뿐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발 빠른 정책 보완으로 2031~2049년 탄소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위헌적 상황을 해소해야 한다.

다만 헌재 결정을 과잉 해석해 과속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 한마디에 ‘2030년까지 40% 감축’(2018년 대비) 목표가 결정돼 두고두고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새로 수립할 목표마저 초현실적 수준으로 설정하는 것은 자칫 산업 기반 붕괴를 자초하는 격이다. 한국의 산업 구조가 탄소 감축에 취약한 제조업 중심이라는 딜레마적 상황을 고려한 창의적 대응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경제·산업계와의 소통이 선행돼야 한다. 탄소 감축의 핵심 이해관계자인 기업들과 협의 없이 대외과시용으로 덜컥 감축목표를 결정한 지난 정부 때의 참사가 되풀이돼선 곤란하다. 탄소감축안이 자해 시나리오가 되지 않으려면 신중한 접근과 정교한 설계가 필수다. 탄소중립 기술혁신에 노력 중인 민간과의 협조 강화로 저탄소 경제구조로의 전환을 가속화해야 한다.

원전 없는 탄소중립은 허구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화석연료보다 탄소배출이 월등히 적은 원전의 활용은 환경 파괴, 기업 경쟁력 저하 등의 부작용 없이 탄소중립에 가까워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해법이다. 천문학적인 신재생에너지 설비투자 부담 경감도 가능하다. 위헌 소송을 승리로 이끈 환경운동가들도 무조건적인 반대와 금지를 넘어 건설적 대안에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