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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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직장인 박모 씨는 최근 이커머스에서 50만원 이상 거래를 할 때면 기업 재무제표나 관련 뉴스 기사들을 먼저 확인한다. 주변 동료들이나 친구들이 티메프 사태로 큰 손해를 보거나 오랜 시간 마음 고생을 한 사례를 봤기 때문이다. 박 씨는 “잘 알려진 이커머스 업체도 안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큰 금액을 거래할 때는 꼭 재무 상황을 체크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커머스 소비자들 사이에서 업체를 선택하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재무제표를 미리 확인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재정 건전성이 탄탄한지 체크하기 위해서다.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를 계기로 구매자들이 안전한 플랫폼으로 옮겨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 강남구 티몬 본사 앞에서 환불을 원하는 피해자들이 우산을 쓰고 사측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티몬 본사 앞에서 환불을 원하는 피해자들이 우산을 쓰고 사측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일 업계에 따르면 재무 안정성과 같은 플랫폼 신뢰도가 이커머스 업체의 덕목으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실제로 티메프 사태 이후 중소 플랫폼 대신 재정 규모나 안정성이 크다고 여겨지는 11번가, G마켓 등 대기업 기반의 이커머스 업체들로 소비자들이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앱 분석 서비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지난 10일 기준) 11번가의 일간 사용자(DAU) 수는 약 161만명으로 티메프 결제 기능이 정지된 7월24일(114만명) 대비 약 40% 증가했다. 신세계 그룹 이커머스 계열사 G마켓도 지난달 1~15일 여행 상품 카테고리 방문자 수가 전년 동기 대비 42% 늘었다.

비교적 재무 건전성이 탄탄한 편으로 알려진 쿠팡이나 무신사 등으로의 쏠림 현상도 나타난다. 이들 플랫폼 업체가 재무 건전성을 적극 알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앞서 쿠팡은 2분기 실적 발표 때 “2분기 쿠팡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55억3600만달러(약 7조5867억원)로 지난해 말(52억4300만 달러) 대비 증가했고, 전체 현금 잔액(제한된 현금 포함)은 58억달러 규모로 작년 동기 대비 22%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회사가 충분히 많은 현금을 보유한 만큼 판매자 정산이나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없다는 것을 내세운 것이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 역시 보도자료를 내고 재무 건전성과 정산 주기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해 말 기준 무신사의 현금성 자산은 4200억원, 자본 총계는 6800억원가량이며 전체 자산 중 단기 상환이 가능한 현금성 자산의 비율이 86%에 달한다는 설명. 무신사는 “정산 주기는 평균 25일이며 현재까지 판매 대금 정산이 지연된 사례가 없다”고 강조했다.

판매자들은 물론 소비자들까지 대금 정산주기를 확인하기 시작하면서 자체적으로 정산 주기를 앞당기고 이를 마케팅 요소로 홍보하는 업체들도 생겨나는 추세다. ‘우리는 티메프와 다르다’며 재무 건전성과 빠른 정산 등을 강조하며 안심시키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11번가는 상품이 배송완료 된 다음날 정산금의 70%를 우선 지급하는 '안심정산'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배송이 1~2일 걸린다고 가정하면 안심정산 서비스를 이용하는 판매자들은 판매 대금의 70%를 소비자 결제가 이뤄진 후 2~3일 이내에 받는다. 나머지 금액 30%는 기존 정산 시점(결제 10일 후)에 지급된다.

기존 정산 주기가 7~8일인 G마켓은 제품이 출고된 다음 날 판매 대금의 90%를 정산해주는 ‘스마일배송’을 판매자들에게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소비자가 오후 8시 전에 주문하면 다음 날 배송을 보장하기 때문에 사실상 제품 배송과 정산이 같은 날 이뤄지는 셈이다. SK스토아 역시 '고객사 케어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자체 재원으로 마련한 예치금을 기반으로 정산 주기를 기존 열흘에서 3일로 단축한다.
서울 중구의 한 주차장에 주차돼 있는 쿠팡 배달 차량. 사진=뉴스1
서울 중구의 한 주차장에 주차돼 있는 쿠팡 배달 차량. 사진=뉴스1
알리익스프레스는 매월 1일과 15일 정산을 진행한다. 소비자가 구매를 확정한 후 7일까지 환불이 발생하지 않으면 고정 정산일인 매월 1일과 15일에 대금이 지급된다.

반면 재무 안전성에 대한 부정적 이슈가 불거질 경우 이를 빠르게 진화하기 위해 시스템을 개편하기도 한다. 생활·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은 국내 중개 판매 입점사업자에게 대금을 매일 정산하는 시스템을 9월에 시행한다고 밝혔다. 유동성 위기설이 온라인을 통해 퍼지면서 이를 잠재우기 위해 정산 시스템을 개편한 것이다.

앞서 지난 27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컬리와 오늘의집 사용자는 조심하라’는 취지의 메신저 갈무리 글이 빠르게 퍼졌다. 이 글에는 자금 유동성 위기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오늘의집은 이번 개편으로 소비자의 ‘구매확정’ 기준일로부터 이틀이 지난 영업일(평일 기준)에 구매확정된 금액을 판매자에게 정산할 계획이다. 오늘의집은 최근 일부 이커머스 사업자의 미정산 사태 이후 ‘일정산’을 도입하기로 결정한 곳은 오늘의집이 처음이라고 했다. 컬리도 입장문을 내고 “현재 컬리의 현금 유동성 등 재무구조는 안정적”이라고 해명했다.

한 이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판매자는 물론이거니와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건전성 이슈가 불거지면 커뮤니티 등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관련 내용이 퍼져나가는 상황이라 선제적으로 나서 재무 상황을 알리고 정산 주기를 줄여 마케팅과 홍보에 활용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