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사고 딛고 'LNG 왕국' 세운 日, 작년 벌어들인 돈이… [원자재 이슈탐구]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글로벌 LNG 생태계 장악한 일본, 작년 140억弗 벌었다
일본 해운사, 세계 최대 LNG선단 보유
LNG플랜트 건설 1위, 관련 기자재도 1위
일본 해운사, 세계 최대 LNG선단 보유
LNG플랜트 건설 1위, 관련 기자재도 1위
일본이 액화천연가스(LNG) 제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글로벌 LNG 선적의 4분의 1을 일본 해운사들이 장악했고, 일본 엔지니어링·건설사들은 자국 금융사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동남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 LNG 발전소와 항만 가스 인프라 등을 짓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탈원전과 함께 국가 차원에서 LNG 산업을 육성한 결과다. 일본이 2015년 원전을 재가동하면서 자국 내 수요가 줄어들자 적극적으로 해외로 진출해 동남아시아 시장을 장악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파이프라인 가스 비중이 줄고 LNG 시장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일본의 LNG 생태계는 또 한번 크게 도약했다.
한국이 원전 생태계를 되살려 체코에서 총계약 규모 24조원의 원전 수주에 주력하는 동안 일본 기업들은 매출이 아닌 순이익으로 한 해 10조원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다.
천연가스 개발과 트레이딩으로만 이익을 내는 게 아니다. 일본 기업들은 LNG 선박 건조를 제외한 LNG 생태계 전반을 장악했다. LNG 운반선을 가장 많이 운영하는 해운사는 NYK라인을 비롯한 일본 기업들이다. 일본 해운사들은 총 134척(실질 소유권 기준)의 LNG 운반선을 확보해 중국(103척)이나 그리스(87척)를 따돌리고 최대 규모 선단을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 해운사 중 LNG 운반선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은 미쓰이OSK라인이다. 세계 LNG 플랜트 수주 1위 역시 일본 지요다화공건설이며, LNG 발전소의 가스터빈 최대 공급업체는 미쓰비시중공업이다. 대우건설이 나이지리아에서 LNG 플랜트를 수주했고, SK E&S가 호주 가스전에 참여하는 등 선전하고 있지만 LNG 업계에서만큼은 일본과의 격차가 크다.
금융 부문에서도 공공에선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이, 민간 상업은행 중엔 미즈호파이낸셜이 LNG 업계의 가장 큰 자금 공급자로 지목된다. 물론 이 때문에 주요 환경단체 등의 표적이 되고 있기는 하다.
일본 정부가 예상보다 빠른 2015년에 전격적으로 원전 재가동을 결정하면서 LNG 산업이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기업은 굴하지 않고 합심해 동남아시아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동남아시아 각국에 LNG 수입 터미널을 짓고, 민자 발전사업을 벌이는 등의 선제적 투자 사업을 벌였다. 기반 시설을 한 번 건설해 놓으면 지속해서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 자원 개발권·인프라 등 지분도 닥치는 대로 매입했다.(한국경제신문 8월 7일, "LNG 수입 '큰손' 이었던 일본, 이젠 '허브'로 거듭난다" 참조) 일본 정부는 공기업 석유천연가스·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가 일본 내 공급과 무관한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신흥국 정부 관계자를 초청해 정보를 제공하고 관광도 시켜주는 등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일본의 시장 확대 전략은 때마침 미국의 천연가스 수출 드라이브와 맞물려 글로벌 LNG 시장이 빠르게 팽창했다. 피터 콜먼 호주 우드사이드에너지 전 대표는 블룸버그통신에 "일본은 끊임없이 시장을 다각화하고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일본이 없었다면 LNG 산업은 지금과 같은 위치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에너지경제재정분석연구소(IEEFA)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은 현재 대만을 비롯해 방글라데시,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에서 30개 이상의 천연가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일본의 LNG 생태계 지배는 중국과의 경쟁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LNG 수입국으로 떠올랐고, 올해 처음으로 중국 수입업체가 일본보다 장기 LNG 공급계약을 더 많이 체결했다. 페트로차이나에 따르면 중국의 LNG 수입량은 올해 전년 대비 12% 증가해 8000만t에 이를 전망이며, LNG의 제3국 재수출도 늘리고 있다. 중국 본토의 조선소는 빠르게 새 LNG 운반선 주문을 받아 건조에 나서고 있다.
한국도 건설사 한양이 건설 중인 전남 여수시 묘도의 '동북아 LNG 허브터미널' 등 현재 건설 중이거나 계획된 LNG 수입·저장 인프라 투자액이 약 11조 3000억원 규모에 달한다. 다만 IEEFA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탄소중립 목표에 따라 예상되는 천연가스 수요와 LNG 터미널 시설 규모 간 불일치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탈원전과 함께 국가 차원에서 LNG 산업을 육성한 결과다. 일본이 2015년 원전을 재가동하면서 자국 내 수요가 줄어들자 적극적으로 해외로 진출해 동남아시아 시장을 장악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파이프라인 가스 비중이 줄고 LNG 시장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일본의 LNG 생태계는 또 한번 크게 도약했다.
한국이 원전 생태계를 되살려 체코에서 총계약 규모 24조원의 원전 수주에 주력하는 동안 일본 기업들은 매출이 아닌 순이익으로 한 해 10조원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다.
'LNG 왕국' 건설한 일본
2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일본 주요 기업들은 천연가스 관련 산업에서 지난 3월로 끝난 2024년 회계연도에 최소 140억달러(약 18조7000억원)의 순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미쓰이물산과 미쓰비시상사 등이 LNG 재수출과 트레이딩으로 약 46억달러의 수익을 냈다. 현재 일본은 수입한 LNG의 약 3분의 2가량을 소비하고 나머지 3분의 1 이상은 해외에 재판매한다. 석유 시장에서 미국·유럽의 메이저 기업과 자원 중개기업이 하는 일을 LNG 시장에서 일본이 하고 있다는 얘기다. 직접 자원 개발과 투자에 나선 일본국제석유개발(INPEX)도 적지 않은 이익을 냈다.천연가스 개발과 트레이딩으로만 이익을 내는 게 아니다. 일본 기업들은 LNG 선박 건조를 제외한 LNG 생태계 전반을 장악했다. LNG 운반선을 가장 많이 운영하는 해운사는 NYK라인을 비롯한 일본 기업들이다. 일본 해운사들은 총 134척(실질 소유권 기준)의 LNG 운반선을 확보해 중국(103척)이나 그리스(87척)를 따돌리고 최대 규모 선단을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 해운사 중 LNG 운반선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은 미쓰이OSK라인이다. 세계 LNG 플랜트 수주 1위 역시 일본 지요다화공건설이며, LNG 발전소의 가스터빈 최대 공급업체는 미쓰비시중공업이다. 대우건설이 나이지리아에서 LNG 플랜트를 수주했고, SK E&S가 호주 가스전에 참여하는 등 선전하고 있지만 LNG 업계에서만큼은 일본과의 격차가 크다.
금융 부문에서도 공공에선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이, 민간 상업은행 중엔 미즈호파이낸셜이 LNG 업계의 가장 큰 자금 공급자로 지목된다. 물론 이 때문에 주요 환경단체 등의 표적이 되고 있기는 하다.
일본 없었다면 지금의 LNG 시장 규모 불가능
영토 내에 천연가스가 거의 없는 일본이 LNG 공급망의 허브가 된 데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일본은 국내 54개 원자로를 전부 폐쇄하기로 한 뒤 사활을 걸고 미국, 호주, 중동을 돌며 가스전 지분을 확보하고 공급 계약을 따냈다. LNG 발전소를 짓고 항만 인프라도 확충했다. 2012년부터 JBIC 등 공공기관이 LNG 시설에 약 400억달러(약 53조5000억원)의 대출을 지원했다.일본 정부가 예상보다 빠른 2015년에 전격적으로 원전 재가동을 결정하면서 LNG 산업이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기업은 굴하지 않고 합심해 동남아시아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동남아시아 각국에 LNG 수입 터미널을 짓고, 민자 발전사업을 벌이는 등의 선제적 투자 사업을 벌였다. 기반 시설을 한 번 건설해 놓으면 지속해서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 자원 개발권·인프라 등 지분도 닥치는 대로 매입했다.(한국경제신문 8월 7일, "LNG 수입 '큰손' 이었던 일본, 이젠 '허브'로 거듭난다" 참조) 일본 정부는 공기업 석유천연가스·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가 일본 내 공급과 무관한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신흥국 정부 관계자를 초청해 정보를 제공하고 관광도 시켜주는 등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일본의 시장 확대 전략은 때마침 미국의 천연가스 수출 드라이브와 맞물려 글로벌 LNG 시장이 빠르게 팽창했다. 피터 콜먼 호주 우드사이드에너지 전 대표는 블룸버그통신에 "일본은 끊임없이 시장을 다각화하고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일본이 없었다면 LNG 산업은 지금과 같은 위치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에너지경제재정분석연구소(IEEFA)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은 현재 대만을 비롯해 방글라데시,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에서 30개 이상의 천연가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당분간 LNG 시장 더욱 확대될 전망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해 전 세계가 노력하고 있지만 LNG발전은 당분간 확대될 전망이다. 가장 많은 오염원을 내뿜는 석탄 화력 발전소를 대체하는 게 시급하며, 천연가스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LNG 공급국인 미국은 이번 10년 동안 LNG 수출을 두 배로 늘릴 예정이다. 독일은 탈원전 정책으로 더 많은 가스 발전소를 건설하고 있고 중국과 인도 역시 석탄발전소 대신 천연가스 발전소를 짓고 있다.일본의 LNG 생태계 지배는 중국과의 경쟁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LNG 수입국으로 떠올랐고, 올해 처음으로 중국 수입업체가 일본보다 장기 LNG 공급계약을 더 많이 체결했다. 페트로차이나에 따르면 중국의 LNG 수입량은 올해 전년 대비 12% 증가해 8000만t에 이를 전망이며, LNG의 제3국 재수출도 늘리고 있다. 중국 본토의 조선소는 빠르게 새 LNG 운반선 주문을 받아 건조에 나서고 있다.
한국도 건설사 한양이 건설 중인 전남 여수시 묘도의 '동북아 LNG 허브터미널' 등 현재 건설 중이거나 계획된 LNG 수입·저장 인프라 투자액이 약 11조 3000억원 규모에 달한다. 다만 IEEFA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탄소중립 목표에 따라 예상되는 천연가스 수요와 LNG 터미널 시설 규모 간 불일치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