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믿거나 말거나 필자는 실패의 화신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때 집안이 폭삭 망했고, 군대에 못 갈 만큼 몸이 아파 의사의 꿈을 포기했다. 수많은 잡(job) 인터뷰에 떨어졌으며, 올해만 해도 수차례 딜(거래)을 놓쳤다. 19년 투자 인생을 뒤돌아보면 삶은 실패의 응집체다. 어떻게 하면 실패를 잘할 수 있는지 ‘해야 할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Do’s and Don’ts)’로 나눠본다.

성공적 실패를 위한 필수 요건 (Do's)

준비된 실패를 해라

[비즈니스 인사이트] '성공적 실패'를 위해 해야 할 것과 아닌 것
불시에 당하는 실패가 제일 고통스럽다. 스스로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한 오만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항상 플랜 B, C, D를 항상 만들어라. 신사업을 준비한다고? 그렇다면 실패가 ‘base case(기본 조건)’라고 인식해야 한다.

2019년 말 코로나19가 습격했을 때 한 1년 정도면 끝날 줄 알았다. 1년 정도 버틸 수 있도록 전 세계 50여 곳의 포트폴리오 회사를 탈탈 털어서 ‘집중 관리군’ 8개를 솎아냈고, 주별로 현금 상황과 선제적 구조조정을 했다. 그런데 웬걸. 의외로 2년 차가 넘어가면서 더 센 위기가 찾아왔다. 다행히 1년간 쌓인 요령으로 4년을 버텼다. 주식 투자를 한다면 중간중간 꼭 출금을 해두라. 경영을 한다면 꼭 차세대 경영진을 뽑아라.

작은 실패를 자주 해라

워런 버핏의 투자 제1, 2 원칙은 ‘돈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영원히 잃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최선은 ‘짧게’ 손절하는 것이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성공적인 스타트업의 공통점은 ‘빠른 피벗팅’(아니다 싶으면 다른 걸로 가는 것)이다. 수조원대 자산가가 된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의 S 의장도, 처음 만났을 때는 온라인 증권 거래를 비롯해 온갖 작은 사업을 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시도하고 아닌 걸 바로 접고 반복하면서 결국 대박을 터트렸다.

실패는 변화의 가장 큰 계기다

이성을 잃고 오기에 ‘몰빵’하지 마라. 실패의 쓴맛을 봤다면 경영진을 갈고, 컨설팅을 받아 비즈니스 모델을 재편하고, 사무실도 더 작은 곳으로 옮겨보라. 잘 안 풀리면 좀 쉬어 보라.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고 서핑도 하면서 코로 귀로 물을 많이 마시면 정신이 번쩍 든다. 말아먹은 투자가 나오면 산업 사이클을 뒤돌아보고, 주주 간 계약서의 구멍을 정리하고, 경영진을 짤 때 하지 말아야 할 실수들을 정리하며 내 삶을 ‘새로고침’한다. 그러다 보면 어제의 나보다 더 현명한 투자자가 돼 있다.

재기할 때 절대 하면 안되는 것 (Don'ts)

사업을 날려도 사람까지 날리지 마라

궁지에 몰렸을 때 진정한 나의 바닥이 드러난다. 신뢰와 인맥이 척도다. 위기 때 주변 사람 혹은 직원 동료와 절연하면서까지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사업가를 종종 목격한다.

너무도 어리석은 행동이다. 투자 인생에서 제일 후회하는 일을 꼽으라면 10여 년간 했던 투자가 짧은 기간에 실패였던 것을 알아채고는 그 회사를 팔았던, 누나라고 불렀던 A사장과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져 버린 것이다. 이후 7년 넘게 고생하며 회사를 돌려놓았지만, 수년간 쌓았던 그분과의 인연은 다시 회복되지 못했다.

본능에 의존하지 마라

워런 버핏, 일론 머스크 같은 천재들과 나를 혼동하지 마라. 중요한 의사결정이라면 당신의 알량한 ‘본능’에 의존하지 마라. 집단 지성은 절대적으로 실수를 줄인다. 경험이라는 시간의 가치를 돈으로 바꿔준다. 전 세계 모든 사모펀드가 ‘투자심의위원회’라는 집단 의사결정 체계를 갖는 것도 같은 원리다. 골프 칠 때 4번 아이언을 잡지 말고, 캐디와 동반자들이 추천하는 것처럼 끊어가는 걸 권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존엄을 잃지 마라

실패로 쫄지 마라. 일의 성패는 나의 존엄을 결정할 수 없다. 투자가 맞지 않으면 다른 걸 하면 된다. 사업이 안 맞으면 월급쟁이를 해라. 조직 생활이 안 맞으면 자영업 n잡러를 해라. 이도 저도 아니면 실패 사례를 묶어서 유튜버를 해도 좋다. 당신은 밥벌이 일보다 훨씬 소중한 존재다.

수많은 실패 덕분에 절대로 투자하지 않는 산업도 생기고 절대 고용하지 않는 경영진도 생겼다. 하다못해 골프에서는 ‘멀리건(mulligan·아마추어의 실수를 감싸주기 위해 티샷 재시도를 허용하는 것)’이 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