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데부', 강박증 과학자와 중국집 여주인의 아슬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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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쇼 런웨이 같이 긴 무대가
두 주인공 사이 관계를 시각화
박성웅·문정희의 명연기 호소력
두 주인공 사이 관계를 시각화
박성웅·문정희의 명연기 호소력
‘랑데부(rendez-vous)’란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한 만남을 의미하는 프랑스어다. 우주과학에서는 두 개의 인공위성이 만나 동일 궤도에 진입하는 비행을 뜻한다.
드넓은 우주에서 두 위성이 만나는 일만큼 어렵고 복잡한 것이 사람 간의 인연. 초연 창작극 ‘랑데부’는 어린 시절 상처를 지닌 두 남녀가 ‘랑데부’를 시도하는 이야기다. 어릴 적 사고로 가족을 잃어 강박증을 앓는 우주과학자 태섭은 박성웅과 최원영, 증오하던 아버지에게 중국집을 물려받은 지희는 문정희와 박효주가 연기한다.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건 독특한 무대. 패션쇼 런웨이 같은 기다란 형태다. 객석도 패션쇼처럼 무대 양옆에 배치됐다. 두 주인공은 펜싱 경기처럼 양쪽에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이 기다란 무대는 두 남녀의 관계가 발전하는 과정을 ‘거리’라는 물리적 척도로 보여주는 장치다. 가운데로 모여 서로 점점 가까워지다가도 바닥에 설치된 궤도에 밀려 다시 멀어진다.
사실적인 감정 묘사가 관객을 빨아들인다. 바늘구멍에 꿰여 들어가지 않는 실처럼 아슬아슬하고 답답한 두 주인공의 관계를 섬세하게 그린다. 짜증과 호기심이 뒤섞인 첫 만남부터 애정을 느끼지만 동시에 불확실함과 연민으로 갈피를 잃은 관계가 진부하지 않고 현실적이다. 감정 묘사가 사실적인 덕에 유머도 작위적이지 않고 세련미가 더해지는 효과까지 있다.
출연진의 호소력 짙은 연기력도 놀랍다. 김정한 연출의 “소년미가 있다”는 평가처럼 박성웅은 강인한 아우라 뒤에 숨겨졌던 연약한 소년 같은 연기가 인상 깊었다. 문정희는 술주정을 부리는 푼수 같은 연기부터 아버지를 향한 애증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눈물까지 힘이 빠지지 않았다. 운명적인 두 남녀의 만남이 자칫 진부하게 그려질 수 있었지만 두 배우의 담백하면서도 맛깔 나는 연기가 웃음을 자아내고 관객을 깊게 빨아들였다. 무대와의 단차가 거의 없는 객석 배치 덕에 두 배우의 에너지가 오롯이 전해진다.
초연인 만큼 어색함이 느껴지는 구석도 있다. 막이 내리고 장면이 전환되는 과정이 부드럽지 않아 다음 대사가 급작스럽게 나오는 대목이 있었다. 두 주인공의 관계가 변하는 과정이 다소 급하게 방향을 트는 구간이 있어 아쉽다. 특히 태섭과 지희가 서로 가까워지다가 러닝머신같이 제자리를 돌기 시작하는 이유가 곰곰이 생각하면 이해는 가지만 조금 빠르게 지나치는 듯하다. 랑데부 직전까지 간 두 남녀가 결국 서로 다른 방향을 보게 되는 이유를 섬세하게 그려낸다면 설득력이 강해질 수 있겠다.
소소한 어색함은 있지만 이야기와 연출에서 고민의 흔적이 묻어난다. 처음 보는 독특한 무대 위에서 배우의 명연기를 침이 튀길 정도로 가까운 눈앞에서 보는 경험만으로도 값어치를 한다. 공연은 9월 21일까지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
드넓은 우주에서 두 위성이 만나는 일만큼 어렵고 복잡한 것이 사람 간의 인연. 초연 창작극 ‘랑데부’는 어린 시절 상처를 지닌 두 남녀가 ‘랑데부’를 시도하는 이야기다. 어릴 적 사고로 가족을 잃어 강박증을 앓는 우주과학자 태섭은 박성웅과 최원영, 증오하던 아버지에게 중국집을 물려받은 지희는 문정희와 박효주가 연기한다.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건 독특한 무대. 패션쇼 런웨이 같은 기다란 형태다. 객석도 패션쇼처럼 무대 양옆에 배치됐다. 두 주인공은 펜싱 경기처럼 양쪽에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이 기다란 무대는 두 남녀의 관계가 발전하는 과정을 ‘거리’라는 물리적 척도로 보여주는 장치다. 가운데로 모여 서로 점점 가까워지다가도 바닥에 설치된 궤도에 밀려 다시 멀어진다.
사실적인 감정 묘사가 관객을 빨아들인다. 바늘구멍에 꿰여 들어가지 않는 실처럼 아슬아슬하고 답답한 두 주인공의 관계를 섬세하게 그린다. 짜증과 호기심이 뒤섞인 첫 만남부터 애정을 느끼지만 동시에 불확실함과 연민으로 갈피를 잃은 관계가 진부하지 않고 현실적이다. 감정 묘사가 사실적인 덕에 유머도 작위적이지 않고 세련미가 더해지는 효과까지 있다.
출연진의 호소력 짙은 연기력도 놀랍다. 김정한 연출의 “소년미가 있다”는 평가처럼 박성웅은 강인한 아우라 뒤에 숨겨졌던 연약한 소년 같은 연기가 인상 깊었다. 문정희는 술주정을 부리는 푼수 같은 연기부터 아버지를 향한 애증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눈물까지 힘이 빠지지 않았다. 운명적인 두 남녀의 만남이 자칫 진부하게 그려질 수 있었지만 두 배우의 담백하면서도 맛깔 나는 연기가 웃음을 자아내고 관객을 깊게 빨아들였다. 무대와의 단차가 거의 없는 객석 배치 덕에 두 배우의 에너지가 오롯이 전해진다.
초연인 만큼 어색함이 느껴지는 구석도 있다. 막이 내리고 장면이 전환되는 과정이 부드럽지 않아 다음 대사가 급작스럽게 나오는 대목이 있었다. 두 주인공의 관계가 변하는 과정이 다소 급하게 방향을 트는 구간이 있어 아쉽다. 특히 태섭과 지희가 서로 가까워지다가 러닝머신같이 제자리를 돌기 시작하는 이유가 곰곰이 생각하면 이해는 가지만 조금 빠르게 지나치는 듯하다. 랑데부 직전까지 간 두 남녀가 결국 서로 다른 방향을 보게 되는 이유를 섬세하게 그려낸다면 설득력이 강해질 수 있겠다.
소소한 어색함은 있지만 이야기와 연출에서 고민의 흔적이 묻어난다. 처음 보는 독특한 무대 위에서 배우의 명연기를 침이 튀길 정도로 가까운 눈앞에서 보는 경험만으로도 값어치를 한다. 공연은 9월 21일까지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