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테헤란로가 ‘부티크 로펌’(특정 분야에 특화한 강소 로펌)의 성지로 떠올랐다. MZ(밀레니얼+Z)세대 변호사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창업에 나서면서다. 이들에게 전통적인 법조 타운 서초동, 대형 로펌이 대기업 고객을 독식하다시피 하는 종로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크고 작은 기업을 겨냥해 세련된 영업 전략을 구사하는 부티크 로펌들은 비싼 임대료에도 테헤란로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MZ 변호사들, 서초 대신 테헤란로 몰린다

테헤란로 로펌 4년 새 42%↑

1일 법무부에 따르면 테헤란로가 자리한 강남구의 법무법인 수는 2020년 149곳에서 2024년(1~8월) 212곳으로 4년 새 42.3% 급증했다. 법원·검찰청이 있는 서초구는 같은 기간 562곳에서 678곳으로 20.6% 증가하는 데 그쳤다.

법무법인 남산에서 15년간 일하다 2022년 독립해 식품·의약 전문 로펌 팔마를 세운 이진욱 대표변호사(사법연수원 36기)는 “사무실 위치를 선정할 때 한국에서 기업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테헤란로가 1순위였다”고 말했다. 2019년 테헤란로에 문을 연 스타트업 전문 로펌 최앤리법률사무소의 최철민 대표변호사(변호사시험 5회)도 “서초동은 낙후된 건물이 많고, 젊은 변호사가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 있는 법무법인 한일의 김경란 변호사(42기)는 “삼성역 인근에서 점심을 먹으면 주변이 온통 변호사들”이라며 "공유오피스를 이용하는 개인 법률사무소까지 포함하면 강남구 변호사 수는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변호사들 사이에서 서초동은 “올드(old)한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반면 퇴직 후 3년 취업 제한 상태인 전직 판·검사들은 여전히 서초·교대역 주변에 개인 사무실을 내는 사례가 많다. 이들은 법원과 검찰청 인근을 오가는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검사 출신’ ‘판사 출신’을 내세워 사건을 수임한다. 이진욱 변호사는 “서초동에 사무실을 두는 것 자체가 개인 사건 위주로 수임하겠다는 시그널(신호)이 된다”고 설명했다.

판교·성수도 뜬다

4년 전 태평양의 이전으로 주목받던 광화문·을지로 일대는 신생 로펌이 진입하기 쉽지 않은 곳으로 평가된다. 이 지역 대기업, 금융사, 외국계 기업 대부분이 김앤장·광장·태평양·세종·지평 등 ‘강북 빅펌’과 오랜 거래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헤란로에는 율촌(파르나스타워), 화우(아셈타워), 바른(바른빌딩), 대륙아주(동훈타워) 등 나머지 10대 로펌이 포진해 있다. 동인, YK 등은 유동 인구가 많은 강남역 일대를 선택했다. 최근 투자업계 불황으로 테헤란로를 떠나는 스타트업이 늘자 공실률이 높아진 것도 부티크 로펌 유입의 요인으로 꼽힌다.

테크 기업과 스타트업이 밀집한 경기 성남 판교나 서울 성수동을 창업 무대로 고려하는 변호사도 늘어나는 추세다. 광장, 태평양, 세종 등은 이미 판교에 분사무소를 설립했다. 로펌업계 관계자는 “내부 고위급 회의에서 판교 진출안이 자주 거론된다”며 “성수동도 새롭게 떠오르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장서우/민경진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