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지 오사카 무역관 과장
심혜지 오사카 무역관 과장
일본의 기반 산업은 자동차다. 1억 인구의 탄탄한 내수시장과 글로벌 브랜드를 바탕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제조업이다. 그렇다면 2대 산업은 무엇일까? 올해의 정답은 ‘관광’이 될 전망이다.

엔화 약세에 힘입어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는 작년 한 해 2506만 명을 기록했다. 올해 3월에는 월 300만 명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 수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내각부가 발표한 2024년 1분기 방일객 소비를 연 환산 시 7조2000억엔(약 65조원) 규모다. 작년 품목별 수출 실적이 1위인 자동차(17조3000억엔)의 절반 수준이며, 2위 반도체 등 전자부품(5조5000억엔), 3위 철강(4조5000억엔)을 초과했다.

코로나 이전과 비교했을 때 돋보이는 소비 트렌드는 ‘엔터테인먼트’이다. 2024년 1분기 방일 외국인 소비액의 비용별 구성비를 살펴보면 ‘숙박(32%)’, ‘쇼핑(29%)’, ‘음식(22%)’, ‘교통(11%)’, ‘서비스(6%)’ 순이다. 2019년 동기 대비 ‘숙박’, ‘교통’, ‘오락 등 서비스’ 등 체험형 소비의 비중은 증가했으나 유일하게 ‘쇼핑’의 비중은 6.7% 감소했다. 스시 만들기 체험이나 전통 의상을 입기, 도심을 벗어난 온천 여행처럼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를 깊게 경험하고 싶어 하는 관광객의 수요가 늘었다.

체험형 소비 성향은 일본인이 한국으로 여행을 갈 때도 이어진다. 인바운드 플랫폼 크리에이트립이 발표한 2023년 방한 외국인 관광객 국적별 소비 트렌드에 따르면 일본 전체 거래액의 40%를 ‘K푸드’가 차지했다. ‘의상 대여’, ‘뷰티 의원’, ‘헤어·뷰티숍’이 뒤를 이었다. 일본어가 지원되는 한국 미용의료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시술을 간단히 예약하거나 좋아하는 아이돌이 다니는 청담동의 뷰티숍에서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링을 받는 체험 코스도 인기이다. 최근에는 한국식 웨딩 촬영을 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예비 신부도 늘고 있다.

일본 경제지 닛케이 트렌디는 2024년 3대 소비&마케팅 키워드 중 하나로 ‘체험으로서의 소비’를 선정했다. 코로나 이후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때 체험의 가치에 돈과 시간을 소비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기업들은 매장에서 물건 판매 이상의 소비자 경험을 중시하며 대응한다. ‘팔지 않는 가게’로 체험을 전면에 내세우는 점포나 커스터마이즈 등 매장 한정 서비스를 확대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일본 내 한류 소비 역시 한국 상품 구매를 넘어 경험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구매한 라면을 직접 조리할 수 있는 라면 편의점이 생겨나며 ‘한강 라면’이라는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한다. 와펜을 붙여 자신만의 아이돌 응원 굿즈를 제작하는 체험형 한국 잡화점도 시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 현지에서 실감하는 한류 열풍은 이제는 말하기 입 아플 정도이다. 매장이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한국發’, ‘한국風’으로 홍보 중인 상품을 쉽게 볼 수 있다. 도심 백화점에서는 한국 유명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도 자주 열린다. 다양한 토핑을 추가해 즐기는 한국식 ‘그릭 요거트’는 기존 일본에서 ‘기리샤 요거트’로 불리던 이름까지 바꾸며 새로운 K 열풍에 탑승했다.

얼핏 진입 장벽이 낮다고 여겨질 수도 있으나 일본 소비자의 눈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SNS 시대가 열리며 한국의 최신 트렌드는 일본에 실시간으로 전해져 한국과 동시에 유행한다. 유행의 전환이 빠르기에 일본 기업은 지금 한국에서 인기인 제품, 한국에서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서비스를 찾는다. 부지런한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트렌드 속에서 기회의 틈을 찾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