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현지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FM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 연장 1차전이 열린 미국 매사추세츠주 노턴의 TPC보스턴(파72) 18번홀(파5). LPGA투어에서 약 3년 만에 성사된 한국 선수 간 연장전은 세 번째 샷으로 승부가 갈렸다. 유해란(23)의 샷이 핀과 3m 거리에 멈추자 빗속에서도 끝까지 경기를 관전하던 갤러리의 환호가 쏟아졌다. 반면 고진영(29)의 샷은 그린 언덕을 맞고 왼쪽 러프로 튀었다. 공을 바라보던 고진영과 그를 응원하던 갤러리의 표정 모두 금세 어두워졌다.
< 트로피 들고 웃음꽃 >  유해란이 1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노턴의 TPC보스턴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FM 챔피언십에서 트로피를 들고 미소를 짓고 있다.  AFP연합뉴스
< 트로피 들고 웃음꽃 > 유해란이 1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노턴의 TPC보스턴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FM 챔피언십에서 트로피를 들고 미소를 짓고 있다. AFP연합뉴스
고진영은 범프 앤드 런(그린 앞 언덕을 맞혀 공의 속도를 줄인 뒤 홀 주변까지 굴러가게 하는 어프로치 샷)으로 승부수를 띄웠지만 공은 홀 뒤쪽으로 크게 벗어났다. 투 퍼트, 보기로 홀을 마무리한 고진영은 패배를 직감한 듯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갤러리를 향해 인사했다. 고진영의 홀아웃을 지켜본 유해란은 버디퍼트를 놓쳤으나 여유롭게 파퍼트를 떨어뜨려 승부의 마침표를 찍었다.

좌절 이겨낸 新 에이스

유해란이 시즌 첫 승이자 통산 2승을 대역전 드라마로 완성했다. 4타 차 공동 6위로 출발했지만 이날 버디 9개를 쓸어 담고 보기는 하나로 막아 8언더파 64타를 쳐 극적인 반등을 일궜다. 최종 합계 15언더파 273타로 고진영과 동률을 이룬 뒤 연장 1차전에서 승리한 유해란은 지난해 10월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 이후 11개월 만에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우승상금은 57만달러(약 6억7000만원)다.

지난해 신인왕 유해란은 올해 유독 우승 운이 따르지 않았다. 이 대회 전까지 올해 톱10에 여덟 차례 이름을 올릴 정도로 기세가 좋았으나 우승 문턱을 넘지 못해 좌절할 때가 많았다. 대부분 마지막 날 결정적 실수 하나가 발목을 잡았다.

특히 지난 7월 열린 CPKC 여자오픈(공동 3위)은 유해란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1타 차 단독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나섰음에도 막판 3개 홀 연속 보기로 무너졌다. 평소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내보이지 않았던 유해란도 그날만큼은 눈물을 쏟았다.

이번 대회 역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줄 알았다. 2라운드에 무려 10언더파를 몰아치며 6타 차 단독 선두로 나섰던 유해란은 3라운드에서 6타를 잃어 공동 6위까지 미끄러졌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3라운드가 끝난 뒤 샷과 퍼트 연습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은 유해란은 마지막 날 8타를 줄이는 집중력으로 짜릿한 역전극을 완성했다. 몇 차례 좌절 끝에 비로소 환한 웃음을 보인 유해란은 “올해 많은 기회를 놓치면서 두 번째 우승까지 정말 어렵게 왔다”며 “오늘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유해란은 이번 우승으로 LPGA투어 한국 군단의 새로운 에이스로 떠올랐다. 올해 LPGA투어에서 한국 선수의 우승은 6월 메이저 대회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양희영(35)에 이은 두 번째다. 유해란은 “샷과 퍼트가 작년보다 나아졌다”며 “한 번 더 우승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다짐했다.

부진 탈출 기회 놓친 고진영

2타 차 단독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고진영은 최근 부진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마지막 18번홀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게 됐다. 약 2m 거리의 버디퍼트가 홀 왼쪽으로 살짝 빗나가는 바람에 승부는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이 퍼트가 들어갔다면 연장전 없이 우승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연장전에서 후배 유해란에게 패해 통산 16승 기회를 다음으로 미룬 고진영은 6월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공동 2위에 이어 시즌 두 번째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의 마지막 우승은 작년 5월 코그니전트 파운더스컵이다. 고진영은 “마지막 샷이 아쉽게도 좋지 않았지만 이번주 전반적으로 탄탄한 경기를 했다”며 “다음에 우승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