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너머 목 잘린 마네킹?... 세계 최대 갤러리 가고시안의 서울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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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APMA 캐비닛서
데릭 애덤스 개인전 '더 스트립'으로
가고시안 한국 첫 전시 열어
데릭 애덤스 개인전 '더 스트립'으로
가고시안 한국 첫 전시 열어

198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문을 연 가고시안은 전 세계에 19개 지점을 운영하는 ‘메가 갤러리’다. 루이스 부르주아, 프랜시스 베이컨 등 유명 작가와 거장들을 거느리고 있다. 미술품 거래로 올리는 연 매출만 1조원. 한국 미술시장 총 매출을 뛰어넘는 금액이다. 스타 작가들을 앞세워 미국, 유럽, 홍콩 등 아시아 지역에서 뮤지엄급 전시를 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올해로 3년째 프리즈 서울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엔 백남준의 ‘TV 붓다’를 선보이며 이슈가 됐다.
애덤스는 이번 국내 전시에서 신작 ‘더 스트립’ 시리즈를 새롭게 소개한다. 모두 신작으로만 준비한 전시다. 이번 작품들의 영감은 모두 길거리에서 나왔다. 백화점 쇼윈도 속 마네킹, 담벼락 벽돌 등이 작품 안에 자리했다. 지나치기 쉬운 길거리와 일상 속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삼았다. 현장을 찾은 애덤스는 “마침 '뷰티'를 다루는 기업 아모레퍼시픽에서 전시를 한다는 게 운명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이번 작품은 모두 그가 직접 찍은 사진에서 출발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기반으로 그림의 구조를 짰다. 실제 그가 도심을 다니며 찍은 윈도우 디스플레이에서 주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작품을 통해 문화적 스토리, 사회적 맥락을 전달하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그에게 그림 속 메시지는 구조, 분할, 기술만큼 중요한 요소다. 애덤스는 “관람객들이 색 질감 구조 등 눈에 보이는 요소 외에도 그림 속에 담긴 의미와 스토리를 바라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다양한 매체가 하나로 합쳐진 실험적 작업을 선보인다. 벽돌을 묘사한 부분은 나무 위에 가짜 벽돌을 붙여 조각처럼 표현했다. 그 위에는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려 마치 그래피티처럼 하트를 그려넣었다. 그 옆에 자리한 그림은 평면 회화다. 페인팅과 조각, 드로잉, 그리고 그래피티가 한 작품 안에서 합쳐진 셈이다. 또다른 작품에서는 패브릭 천을 잘라 캔버스 위에 붙였다. 질감을 ‘100%’ 활용했다는 것을 보여주려 의도했다.

모든 작업을 마친 후엔 이 그림이 어떤 생각과 성격을 가지고 있을까를 상상하며 어울리는 노래를 골라 이름을 붙인다. 마치 인격체를 대하듯 작품을 대한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 중 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흑인 그룹의 노래로 이름을 지었다. 미국 사회 속에서 흑인의 삶에 대해 주로 작업 활동을 펼쳐 온 작가의 이력과도 상통한다.

그가 처음 찾은 한국에 느낀 감상도 이와 맞닿아 있다. 그는 국내 대중들의 적극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설치가 마무리될 즈음 아모레퍼시픽 건물을 지나던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며 서스럼없이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왔다는 것. 애덤스는 "나는 예술에 관심이 없는 일반 대중들의 주목을 받는 게 좋다"며 "모르는 이들을 작품으로 감동시키는 것이 수만 배는 더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닉 시무노비치 디렉터 또한 "우리는 세계 어디서든 절대 작품이나 작업 정신이 뒤쳐지지 않는 작가만 소개한다"며 "데릭 애덤스는 현재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중요한 작가"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10월 12일까지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