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APMA 캐비닛에서 열리는 가고시안갤러리의 개인전 '더 스트립'으로 한국을 찾는 작가 데릭 애덤스.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APMA 캐비닛에서 열리는 가고시안갤러리의 개인전 '더 스트립'으로 한국을 찾는 작가 데릭 애덤스.
미국 대표 갤러리 가고시안이 서울을 찾아왔다.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기간에 맞춰 갤러리 설립 이래 첫 번째 서울 전시를 열면서다. 세계 대표 갤러리의 서울 진출에 세계 예술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이들이 첫 전시를 장식할 주인공으로 점찍은 작가는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작업을 펼치는 작가 데릭 애덤스. 이번 전시를 계기로 처음 한국을 찾은 그는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APMA 캐비닛에서 ‘더 스트립’으로 관객과 인사를 나눈다.

198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문을 연 가고시안은 전 세계에 19개 지점을 운영하는 ‘메가 갤러리’다. 루이스 부르주아, 프랜시스 베이컨 등 유명 작가와 거장들을 거느리고 있다. 미술품 거래로 올리는 연 매출만 1조원. 한국 미술시장 총 매출을 뛰어넘는 금액이다. 스타 작가들을 앞세워 미국, 유럽, 홍콩 등 아시아 지역에서 뮤지엄급 전시를 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올해로 3년째 프리즈 서울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엔 백남준의 ‘TV 붓다’를 선보이며 이슈가 됐다.

애덤스는 이번 국내 전시에서 신작 ‘더 스트립’ 시리즈를 새롭게 소개한다. 모두 신작으로만 준비한 전시다. 이번 작품들의 영감은 모두 길거리에서 나왔다. 백화점 쇼윈도 속 마네킹, 담벼락 벽돌 등이 작품 안에 자리했다. 지나치기 쉬운 길거리와 일상 속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삼았다. 현장을 찾은 애덤스는 “마침 '뷰티'를 다루는 기업 아모레퍼시픽에서 전시를 한다는 게 운명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이번 작품은 모두 그가 직접 찍은 사진에서 출발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기반으로 그림의 구조를 짰다. 실제 그가 도심을 다니며 찍은 윈도우 디스플레이에서 주로 영감을 얻었다.

데릭 애덤스, Who Can I Run To (Xscape), 2024
데릭 애덤스, Who Can I Run To (Xscape), 2024
애덤스의 작업은 사진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위에 의미와 스토리를 얹어 각색한다. 마네킹의 피부색이 모두 다른 데에도 그의 의도가 담겨 있다. 다양한 인종을 그려넣으며 미국에서 살아가는 유색인종을 조명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문화적 스토리, 사회적 맥락을 전달하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그에게 그림 속 메시지는 구조, 분할, 기술만큼 중요한 요소다. 애덤스는 “관람객들이 색 질감 구조 등 눈에 보이는 요소 외에도 그림 속에 담긴 의미와 스토리를 바라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다양한 매체가 하나로 합쳐진 실험적 작업을 선보인다. 벽돌을 묘사한 부분은 나무 위에 가짜 벽돌을 붙여 조각처럼 표현했다. 그 위에는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려 마치 그래피티처럼 하트를 그려넣었다. 그 옆에 자리한 그림은 평면 회화다. 페인팅과 조각, 드로잉, 그리고 그래피티가 한 작품 안에서 합쳐진 셈이다. 또다른 작품에서는 패브릭 천을 잘라 캔버스 위에 붙였다. 질감을 ‘100%’ 활용했다는 것을 보여주려 의도했다.
데릭 애덤스, Use Your Heart (SWV), 2024
데릭 애덤스, Use Your Heart (SWV), 2024
이번 작품의 제목들은 모두 노래에서 따 왔다. 그는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할 때마다 매일 음악을 크게 틀어놓을 만큼 음악을 사랑한다. 리듬, 멜로디를 색과 구성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작업 당시 듣는 음악이 결과물을 좌지우지한다.

모든 작업을 마친 후엔 이 그림이 어떤 생각과 성격을 가지고 있을까를 상상하며 어울리는 노래를 골라 이름을 붙인다. 마치 인격체를 대하듯 작품을 대한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 중 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흑인 그룹의 노래로 이름을 지었다. 미국 사회 속에서 흑인의 삶에 대해 주로 작업 활동을 펼쳐 온 작가의 이력과도 상통한다.

가고시안갤러리가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APMA 캐비닛에서 여는 데릭 애덤스의 개인전 '더 스트립'. 외부에서 전시장이 들여다보인다.
가고시안갤러리가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APMA 캐비닛에서 여는 데릭 애덤스의 개인전 '더 스트립'. 외부에서 전시장이 들여다보인다.
이번 전시는 아모레퍼시픽 건물 밖에서도 볼 수 있다. 애덤스에게 바깥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전시장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가 일반 대중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을 즐기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이 마치 쇼핑몰 쇼윈도를 보듯 내 작품을 마주하는 과정이 즐겁다고 느낀다”고 했다.

그가 처음 찾은 한국에 느낀 감상도 이와 맞닿아 있다. 그는 국내 대중들의 적극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설치가 마무리될 즈음 아모레퍼시픽 건물을 지나던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며 서스럼없이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왔다는 것. 애덤스는 "나는 예술에 관심이 없는 일반 대중들의 주목을 받는 게 좋다"며 "모르는 이들을 작품으로 감동시키는 것이 수만 배는 더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창문 너머 목 잘린 마네킹?... 세계 최대 갤러리 가고시안의 서울 데뷔
일각선 세계 대표 갤러리 가고시안이 서울 첫 번째 전시로 비교적 시장에 잘 알려지지 않은 데릭 애덤스를 선택했다는 것을 놓고 의문도 내놨다. 이에 가고시안 서울 이지영 디렉터는 "첫 전시인만큼 신선하고 새로운 얼굴을 선보이고 싶었다"며 "이미 잘 알려진 대형 작가 대신 강렬한 데뷔전을 치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닉 시무노비치 디렉터 또한 "우리는 세계 어디서든 절대 작품이나 작업 정신이 뒤쳐지지 않는 작가만 소개한다"며 "데릭 애덤스는 현재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중요한 작가"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10월 12일까지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