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종합 8위를 차지했다. 10등 안에 서양이 7, 동양이 한⸱중⸱일, 3이다. 그런데 눈에 띄는 나라가 있다. 우리보다 두 계단 위 6위를 기록한 네덜란드다. 영국⸱이탈리아⸱독일이 다 그 밑이다. 인구 1780만 명, 면적은 남한의 3분의 1. 대단하지 않은가?

클래식 쪽에서도 빛나는 네덜란드의 저력을 무시할 수 없다. 우선 베토벤의 인기 서곡인 에그몬트(Egmond). 에그몬트는 사람 이름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오늘날의 북네덜란드 지역 명이다. 여기를 다스리던 라모랄 판 하베러(Lamoraal van Gavere,1522~1568)라는 인물이 바로 스페인의 압제에 맞섰던 독립 영웅이다.

영어나 독어식으로는 에그몬트의 라모랄 백작(Lamoral Graf von Egmond), 더 간단히는 에그몬트/에히몬트 백작이 된다. 그의 일대기를 괴테가 1788년 희곡으로 내놨고, 네덜란드 조상의 피가 흐르는 베토벤이 40세 때인 1810년 서곡으로 만들어 유명해졌다. ‘운명교향곡의 축소판’ 같은 아우라를 띠는 작품.
네덜란드의 영웅 에그몬트 백작 / 사진출처. 독일 위키피디아
네덜란드의 영웅 에그몬트 백작 / 사진출처. 독일 위키피디아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다음은 바그너의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이다. 원제가 Der fliegende Holländer. 직역하면 ‘나는(비행하는) 홀란트 인’이다. 우선 독일어 ‘fliegen/플리겐’은 직역하면 ‘날다’지만 다른 뜻으로 ‘내달리다/나부끼다/몹시 떨다’의 뜻도 있다. 여기서는 마치 유령선처럼 끊임없이 항해⸱표류한다는 의미.

네덜란드를 과거에 홀란트라고 많이 불렀는데 이유는 북해를 마주 보는 남북 홀란트 주가 독립을 제일 먼저 이뤘고, 사실상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지역이라 그렇다. 홀란트에서 한자 나라 이름 화란(和蘭)이 온 것으로 암스테르담⸱헤이그⸱로테르담 등 대도시가 모두 이 화란 지역에 속해 있다.

오페라 내용은 최고의 뱃사람으로 평가받는 화란인 선장이 몰살당한 선원들과 배에 실린 금은보화로 영원히 표류하는 운명이었으나 순결한 여인의 사랑과 희생으로 마침내 구원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이제 현재로 와보자. 악단과 아티스트는 어떨까.

베를린 필, 빈 필 다음으로 꼽히는 오케스트라면 어디를 꼽겠는가. 과거에는 런던 심포니나 런던 필을 들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RCO라야 보다 설득적이다.

RCO, 즉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Amsterdam). 역사가 무려 136년. 빌렘 멩겔베르크, 에두아르드 반 베이눔,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등 자국의 거장 지휘자들이 실력을 키운바 현재 최고의 연주력을 뽐낸다.

오늘의 주인공을 만날 차례. 연주자라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엘리 아멜링(1933~ ,Elly Ameling)이다. 네덜란드 최대 항구도시 로테르담 출신. 1960~1980년대를 주름 잡았던 가수로 특유의 아우라를 지녔다.

‘아멜링’이라고 입과 혀를 놀려 발음할 때의 그 느낌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맑고 밝고 투명하다. 고상하고 우아하며 또렷하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무색무취하지도 않은 존재감 있는 중도의 음색으로 고품질의 연주를 뽑아낸다. 아멜링은 오페라 출연은 하지 않았으며 바흐⸱헨델⸱비발디의 종교음악이나 베토벤⸱슈베르트⸱슈만⸱브람스 등의 가곡 연주에 집중했다.
엘리 아멜링 / 사진출처. 다음 이미지
엘리 아멜링 / 사진출처. 다음 이미지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슈베르트의 가곡 ‘음악에/An die Musik’는 많이 알려져 있다. 독일어 전치사 an은 영어의 to/at/on/by 등 여럿과 겹치지만 여기서는 ‘붙임/에게’가 적절할 것이다. ‘음악에 붙임/음악에게’가 낫지 달랑 세 글자 제목 ‘음악에’는 너무 했다.

“고상한 예술(음악)이여, 숱하게 많았던 음울한 시간에/거친 인생의 질곡이 나를 농락할 때/자네는 내 마음을 따뜻한 사랑의 온기로 덥혀주었네/나를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끌어 주었어/때로 하프 악기에서 한숨 소리가 흐르기도 했었지/그러나 부드럽고 신성한 자네의 화음이야말로/더 좋은 하늘과 땅을 내게 열어주었어/음악이여! 나는 자네에게 늘 감사한다네”

[슈베르트 ‘음악에 붙임’. 소프라노 엘리 아멜링 노래, 피아노 외르크 데무스]


슈베르트가 20살 때인 1817년, 자신과 이름은 물론 얼굴도 비슷한 단짝 친구 프란츠 폰 쇼버(Franz von Scober,1796~1882)로부터 받은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왼쪽] 아우구스트 리더가 그린 슈베르트 초상화(1875) [오른쪽] 프란츠 폰 쇼버(1796~1882) / 사진출처. 독일 위키피디아
[왼쪽] 아우구스트 리더가 그린 슈베르트 초상화(1875) [오른쪽] 프란츠 폰 쇼버(1796~1882) / 사진출처. 독일 위키피디아
아멜링이 반주 전문 피아니스트 외르크 데무스(Jörg Demus,1928~2019,墺)와 함께 1970년 녹음한 음반이야말로 곡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그윽하게 마음을 파고드는 명곡이다.
[왼쪽] 엘리 아멜링의 슈베르트, 슈만 가곡 음반 / 사진출처. 지니뮤직 [오른쪽] 외르크 데무스 / 사진출처. discogs
[왼쪽] 엘리 아멜링의 슈베르트, 슈만 가곡 음반 / 사진출처. 지니뮤직 [오른쪽] 외르크 데무스 / 사진출처. discogs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