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정기국회, 의회정치 본질에 충실해야
정기국회가 개회했다. 국회법은 정기국회 일정과 관련해 ‘정기회는 매년 9월 1일에 집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기국회’는 100일, ‘임시국회’는 30일간 개회하도록 국회법이 규정한 것을 보면 정기국회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정기국회는 결산심사, 대정부 질의, 국정감사(10월 7~25일), 법안 심의, 내년 예산안 심사를 진행한다. 결산심사로 정부의 전년도 예산 집행을 확인하고, 대정부 질의로 정부 정책 전반을 따져보며, 국정감사로 정부 기관을 감사하고, 예산심사로 내년 나라 살림 규모를 확정 짓는다. 따라서 정기국회 기간에는 정부 고위 공무원들이 국회에서 상시 대기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정기국회는 의회정치의 꽃이다.

의회는 원래 왕의 자문회의에 기원을 두고 있다. 왕이 중세 봉건영주들을 초대해 대접하고 지지를 요청하는 의미의 자문이다. 봉건영주, 종교지도자, 왕과 충복들이 모였다. 이후 의회는 ‘영향력 있는 대표자’로 구성됐고 계급 대표성을 가진 의회로 재탄생했다. 중세 영국의 의회, 프랑스의 ‘3부 회의’, 스페인 의회(cortes)가 그랬다. 이후 신분·계급 대표는 지역·집단 대표로 질적 변화를 이뤘다.

유럽의회 역사는 왕이 협상으로 원하는 정통성을 인정받고 의원은 이익을 얻는 타협이라는 ‘게임의 룰’이 정착됐음을 보여준다. 의회는 지역과 지역 그리고 집단과 집단이 타협하는 관행을 이어왔다. 연방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법과 예산을 두고 타협하는 ‘룰’을 정착시켰다. 종합하면 집단과 집단, 지역과 지역이 ‘협상과 타협’으로 국가 공동체를 쪼개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의회의 본질이 됐다.

정기국회 개회를 앞두고 국민의힘은 ‘의원 연찬회’, 더불어민주당은 ‘의원 워크숍’을 통해 정기국회 전략을 수립하고 통과시키고자 하는 핵심 법안을 선택했다. 우선 입법과제로 국민의힘은 170건, 더불어민주당은 165건의 법안을 선정했다. 하지만 왜 170건, 165건인지 설명은 없다. 민주당으로서는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시한 일방적 숫자이고, 국민의힘 의석으로는 단독 처리가 힘든 숫자다. ‘재탕·삼탕 나열식 법안 선정’ ‘핵심·우선 법안 숫자 상대 당과 비슷하게 맞추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주목할 대목은 양당이 연찬회와 워크숍을 마치며 채택한 결의문에 있다. 국민의힘은 108명 의원의 ‘결속과 단합’에 방점을 두고, 민주당은 ‘투쟁’을 강조하며 170명 의원 전원이 ‘사즉생의 각오로 분골쇄신’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양당의 정기국회 전략에 의회정치의 본질인 ‘협상’이 빠져 있어 아쉽다.

정치는 야당의 입법 강행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입법부-행정부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헌법의 삼권분립에 기반하지만 왜 삼권분립이고 무엇을 위한 견제와 균형인지 숙고해야 한다. 권력을 분립시켜 특정 기관의 권력을 통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권력 일방으로는 무엇도 안 되니 3권이 ‘협력해서 효율적으로 국정 운영하라’는 것이 본질이다.

‘강행 처리-거부권-법안 폐기’ 무한 도돌이표인 거대 야당 대 용산의 ‘강 대 강 정치’로는 국회와 정부의 존재 이유 상실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강 대 강 정치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민주주의 본질인 타협과 공존으로 돌아가라는 의미다. 여야가 대치하고 싸우는 동안 ‘딥페이크 관련 성범죄 무대책·무대응’ ‘딥페이크 착취물 취약국 1위 국가’의 불명예를 얻었다. 국민은 정부와 국회가 어떤 딥페이크 대책을 세웠는지 질책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거대 야당이 법안 강행으로 얻은 게 아무것도 없고, 정부 역시 야당의 협조 없이는 어떤 정책 집행도 정당성을 얻기 어려움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정부와 국회 모두 협의에 주력해야 한다. 특히 국회는 의회정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행정부가 마련한 정책을 여야가 국민 의견을 수렴해 세련되게 고쳐 법안으로 만들어 정책의 정당성을 보장해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정기국회 100일 동안 여야에 필요한 것은 단합이나 사즉생의 전투력이 아니다. 왕과 영주들의 타협, 계층·집단 간 타협이라는 의회정치의 기본 ‘게임의 룰’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