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9월 2일 오후 3시 27분

[취재수첩] 상장 문턱 높이기? 문제 기업 퇴출이 우선이다
“금융당국이 점쟁이도 아닌데 미래 유망기업과 좀비기업을 당장 판가름할 수 있을까요?”

한 증권사 기업공개(IPO) 담당 임원이 최근 한국거래소의 상장 심사 기준을 놓고 한 말이다. 지난해 ‘파두 사태’ 등으로 신규 상장 문턱이 높아졌다는 한탄이다. 파두 사태가 부실 검증 논란으로 번지자 최근 거래소는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보이는 기업에 더욱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금융감독원도 반복적인 증권신고서 제출을 요구하며 예비 IPO 기업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다. 기업의 기술력과 미래 성장성보다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엄격한 관리가 중요한 과제가 됐다.

문제는 유망한 강소기업까지 예비 한계기업으로 매도된다는 데 있다. 특례상장제도 등은 당장은 적자 기업이더라도 미래 성장성이 있다면 자금 조달에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정작 해당 제도의 순기능을 누려야 하는 기업들까지 눈치만 보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상장 문턱을 높이는 게 능사가 아니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보다는 상장 기업 가운데 문제 있는 기업을 신속하게 퇴출하는 자정 기능이 우선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 증시에서는 최근 3년간 신규 상장한 기업보다 더 많은 수의 기업이 퇴출당했다. 2022년부터 최근 3년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된 기업은 341곳으로 같은 기간 신규 상장사(128곳)보다 많았다. 미국 나스닥시장에서도 이 기간 477곳이 상장하는 동안 685곳이 퇴출당했다.

증시 입성 문턱을 낮춘 상태로 유지하는 대신 시장에서 투자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기업을 신속하게 증시에서 퇴출해 시장 건전성을 유지한 결과다. 반면 같은 기간 국내 증시에선 오히려 상장 기업이 늘었다. 매년 신규 상장 기업 수가 상장폐지 기업 수를 웃돌아서다. 유가증권시장은 3년간 상장폐지 기업이 18곳, 신규 상장 기업은 37곳이다. 코스닥시장은 상장폐지 104곳, 신규 상장 339곳으로 신규 상장사가 월등히 많았다. 한계기업이 다수 발생하더라도 대부분 개선 기간을 부여받아 살아남는다. 현재 코스닥시장에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해 거래정지 상태로 연명하는 상장사만 70여 곳에 달한다.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 아래 거래소의 칼끝이 무뎌진 사이 국내 증시를 향한 신뢰도와 건전성은 바닥에 떨어졌다.

올해 밸류업 프로그램과 맞물려 상장폐지 요건 강화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기업에 주어지는 개선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 등이 논의 중이다. 이와 함께 시가총액 기준과 거래량 기준 등도 강화해 거래소의 퇴출 기능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게 자본시장업계의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