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장미란' 부담감?…"'나니까 할 수 있어' 되뇌며 바벨 들었죠"
박혜정(21·사진)에게는 ‘엔딩요정’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파리올림픽 마지막 날 여자 역도 81㎏급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대한민국의 역대 최다 메달(금 13개, 은 9개, 동 10개) 타이기록을 완성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최근 경기 고양시 장미란체육관에서 만난 박혜정은 “올림픽 전보다 역도에 더 큰 관심을 가져주신다는 것을 하루하루 실감하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유치원 때부터 또래보다 키가 훌쩍 커 늘 맨 뒷자리에 섰던 박혜정은 공부보다 운동장에서 뛰는 걸 좋아하던 어린이였다. 선생님의 권유로 중학교 때 처음 바벨을 든 그는 ‘폭풍 성장’을 해냈다. 선부중 3학년 때 합계 255㎏을 들어 올려 한국 여자 역도의 전설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차관(41)이 고2 때 이룬 기록 235㎏을 훌쩍 넘었다. 투포환 선수 출신 어머니와 축구선수 출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운동유전자에 순발력과 유연성까지 갖춘 결과였다. 고교 때 세계 주니어무대를 평정하고 성인 무대에서도 세계선수권 3관왕, 항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낸 그에게는 ‘제2의 장미란’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박혜정은 “존경하는 분이어서 부담스럽기도 했다”면서도 “그래도 ‘나니까 할 수 있지! 나니까 그런 별명도 붙여주는 거야’라고 스스로 세뇌했다”고 말했다.

이번 올림픽 일정이 발표되자 마지막 주자를 맡은 박혜정에게 다시 한번 기대가 쏠렸다. 그리고 박혜정은 인상 131㎏, 용상 168㎏, 합계 299㎏을 들어 올리며 은메달로 기대에 화답했다. 특히 인상에서 자신이 세운 한국 신기록 130㎏을 1㎏ 넘어서며 한국 역도 역사를 새로 썼다. 박혜정은 “인상이 다소 약하다고 판단해 올림픽 전에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며 “올림픽이라는 무게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이 역시도 국제무대 중 하나’라고 마음을 다잡은 것도 효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박혜정의 은메달은 피땀 어린 매 순간이 만들어낸 결과다. 180㎏의 바벨을 들어 올리는 힘을 내기 위해 매일 백스쾃 180㎏부터 서서히 올린다.

박혜정의 시계는 이제 4년 뒤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에 맞춰 흐르고 있다. 이번 금메달을 따낸 리원원(중국)이 압도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파리에 정말 많은 한국분이 와주셨고, 큰 힘을 주셨어요. 후속 일정에 쫓겨 한 분 한 분께 인사를 못 드린 게 아쉽습니다. LA에서는 꼭 응원해주신 분들과 인사하고 싶어요. 물론 금메달을 건 ‘역도요정’으로요!”

고양=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