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콘도, The Blues Musician, 2021, oil on canvas. /필립스옥션
조지 콘도, The Blues Musician, 2021, oil on canvas. /필립스옥션
아시아 최대 미술장터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와 프리즈 서울의 개막으로 서울의 가을이 들썩이고 있다. KIAF-프리즈에 가볼 여건은 안 되지만 '대한민국 미술 명절'을 그냥 보내기 아쉽다면 서울 화동 송원아트센터를 찾아보는 것도 좋다.

세계 3대 경매사인 필립스옥션이 ‘Azure Horizons: 푸른 세계로의 여정’ 기획전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니콜라스 파티부터 우고 론디노네, 조지 콘도, 이우환까지 대형 아트페어가 열릴 때마다 ‘오픈런’이 벌어지는 글로벌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다.
니콜라스 파티, Tree with snow, 2017, pastel on canvas. /필립스옥션
니콜라스 파티, Tree with snow, 2017, pastel on canvas. /필립스옥션
필립스옥션은 KIAF-프리즈 서울 첫해인 2022년부터 특별전을 열어 왔다. ‘뉴 로맨틱스’(2022년), ‘잠시 매혹적인’(2023년)이라는 표제로 열린 지난 전시들은 홍콩에서 열릴 경매에 내놓을 작품들을 미리 선보이는 전형적인 경매 프리뷰 성격이 짙었다. 서울을 찾은 국내외 컬렉터의 이목을 끌기 위한 이벤트라는 느낌이 강했다는 얘기다.

올해는 달라졌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하늘빛(Azure)’을 탐한 화가들의 작품만 모았다. 경매 프리뷰가 아닌 전시로서도 분명한 색깔을 가진 기획전을 꾸린 것. 미술사에서 가장 가치 있는 안료 중 하나로 꼽히는 하늘빛이 가진 ‘세련된 미니멀리즘’을 주제로 잡았다는 게 필립스옥션의 설명이다.
이우환, 무제, 1976. /필립스옥션
이우환, 무제, 1976. /필립스옥션
전시장 맨 아래층이 하이라이트다. 하나 같이 잘나가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걸렸는데, 온통 푸른 세상이다. 21세기 거장으로 불러도 손색없는 니콜라스 파티의 ‘Tree with snow’가 인상적이다. 한겨울의 나무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어린 시절 탐험한 스위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는데, 파티의 회화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파스텔 질감이 드러난다. 최근 대규모 전시를 연 호암미술관에도 ‘여름 풍경’처럼 푸른색, 숲을 소재 삼은 작품들이 걸린 만큼 눈여겨볼 만하다.

작년 프리즈 서울이 개막하자마자 280만 달러(약 40억 원)에 작품이 팔려나간 조지 콘도의 작품도 걸렸다. ‘Blues Paintings’ 시리즈 중 하나인 ‘The Blues Musician’이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얼굴 형상을 왜곡하는 콘도 특유의 스타일이 살아있다. 블루스 음악의 즉흥성, 자발성 같은 특성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콘도가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우울한 감정(Blues) 속에서 그렸단 사실을 알고 보면 중의적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피에르 술라주, Peinture 202 x 143 cm, 25 septembre 1967, oil on canvas. /필립스옥션
피에르 술라주, Peinture 202 x 143 cm, 25 septembre 1967, oil on canvas. /필립스옥션
이우환의 작품도 전시에 나왔다. 연속된 파란색 붓질이 돋보이는 1976년 작 ‘무제(Untitled)’다. 당시 일본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며 작품성을 완성해가던 과도기 작품이라 가치가 상당하다. 이 밖에도 데본 드 자르댕, 리우 인, 김민구 등 시장에서 주목받는 작가들이 자신만의 시선을 담아 완성한 푸른빛의 작품들도 눈에 담을 만하다.

전시장 1층에는 오는 11월 홍콩에서 열리는 근현대 미술 경매에 나오는 주요 작품들이 걸렸다.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인 리우 예의 ‘Mondrian, Hello’가 대표적이다. 추정가만 10억~15억 원에 달하는 이 그림은 사실주의와 추상주의적 필치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피카소와 샤갈에 이어 루브르 미술관에서 생전 회고전을 연 세 번째 예술가인 피에르 술라주가 남긴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전시가 짧은건 아쉬운 대목이다. 9월 8일까지.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