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가격이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 않았던 명동의 한 기념품점 판매대 / 사진=성진우 기자
2일 가격이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 않았던 명동의 한 기념품점 판매대 / 사진=성진우 기자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나요. 제도를 아무리 바꿔도 바가지 씌우려는 업자는 끝까지 씌우죠. 일부 업자들 때문에 상권 전체가 싸잡아서 욕먹는 상황이 정말 지긋지긋해요." (명동 상인 50대 임모 씨)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바가지 장사를 근절하기 위해 명동에 도입된 '가격 표시제'가 시행된 지 만 1년을 맞았다. 많은 가게가 대체로 제도를 잘 따르고 있지만, 일부 지하상가 점포에선 여전히 제대로 가격을 표시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자체는 추석 전 집중 단속을 예고했다.

일부 가게에선 아직도 '같은 제품, 다른 가격'

서울시 중구는 지난해 10월부터 명동 일대 상권을 가격표시 의무지역으로 선정하고, 판매 제품에 가격표를 의무적으로 붙이도록 해왔다. 전부터 꾸준히 제기된 외국인 관광객 대상 바가지요금 문제를 근절하겠단 취지다.

가격 표시제가 시행된 지 1년 가까이 됐지만, 가격표시 의무지역에 해당하는 일부 지하상가 점포는 여전히 가격표를 붙이지 않고 영업 중이다.

특히 외국인이 주로 찾는 가게에서 이 같은 행위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이날 오전 을지로입구역과 명동역 사이 지하상가에선 가격표 없이 영업하는 가게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명동 지하 상가에서 정확한 가격 표기 없이 판매 중인 앨범, K팝 굿즈들 / 사진=성진우 기자
명동 지하 상가에서 정확한 가격 표기 없이 판매 중인 앨범, K팝 굿즈들 / 사진=성진우 기자
K팝 굿즈를 주로 팔고 있는 A 가게도 대다수 제품에 가격표가 없었다. CD, 아이돌 스타를 본떠 만든 인형 등이 놓인 가판대엔 가격표가 붙어있어야 할 위치에 '포장을 뜯지 말라'는 경고문만 영어와 중국어로 쓰여있었다. 제품마다 가격표가 따로 붙어있단 업주 설명과 달리 확인해본 CD 8개 중 가격표가 붙은 제품은 단 한 개에 불과했다.

기념품 가게 역시 가격 표시제를 어기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B 가게는 삼베 원단으로 짠 파우치, 태극기가 그려진 휴대폰 케이스 등 기념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면서 가격표를 제대로 붙여놓지 않았다. 가령 최근 가장 잘 팔린다는 젓가락 5개 세트 제품은 포장지 겉면과 상품이 놓인 판매대 어디에서도 가격표를 확인할 수 없었다. 직접 가격을 묻자, 업주는 "한 세트에 6000원인데 여러 개 사면 더 싸게 줄 수 있다"고 답했다.

정확한 가격이 매겨져 있지 않다 보니, 같은 제품이라도 가게마다 가격이 다르기도 했다. B 가게 바로 인근의 다른 기념품 가게에선 같은 젓가락 제품을 5000원에 팔았다. 또 다른 가게는 7500원이었다. 적정한 가격을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바가지'를 쓸 위험이 커지는 셈이다.

가격 표시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던 한 업주는 "제품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하나하나 일일이 가격표를 붙이는 것이 어렵다"며 "어차피 가격은 흥정 과정에서 바뀔 수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가격 표시제에 따라 가격표를 달아 놓은 명동 상점들. 과자 판매점(왼쪽)과 의류 판매업체(오른쪽). / 사진=성진우 기자
가격 표시제에 따라 가격표를 달아 놓은 명동 상점들. 과자 판매점(왼쪽)과 의류 판매업체(오른쪽). / 사진=성진우 기자
미국 관광객 크리스티안(34)은 "가격표가 없는 제품을 살 때 가격을 일일이 물어봐야 해 불편하고, (업자에 대한) 신뢰감도 떨어진다"며 "관광객에겐 다른 가격을 적용해 업자가 더 큰 이익을 얻을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또 중국인 관광객 웨이지엔(26)은 "가격표만 제대로 있다면 (바가지요금 등) 사기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하상가에서 11년째 옷 장사를 해온 임모 씨는 "가격 표시제 시행 후 판매대가 난삽해 보일 정도로 온갖 가격표를 붙이는 등 많은 상인이 노력 중"이라며 "다만 외국인이 주로 구매하는 몇 개 품목에서 아직 바가지요금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단속 노력 기울여도 완벽한 점검 '역부족'

구청은 제도 도입 후에 한 달에 한 번씩 단속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격표시 의무지역에 해당하는 가게가 지하상가를 포함해 1230여개에 달하다 보니 실제 상인들은 단속 노력을 체감하진 못하는 상황이다.

평일 오전 10시부터 7시까지 근무한다는 한 화장품 가게 직원은 "정책이 막 시행될 때 안내문이 오고, 올해 3~4월에 공무원이 방문해 조사하긴 했었다"며 "그 이후엔 가게에 직접 방문해 조사한 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2일 명동 거리 인파 / 사진=성진우 기자
2일 명동 거리 인파 / 사진=성진우 기자
단속 자체가 불가능한 노점(거리 가게)도 아직 사각지대에 있다. 노점 실명제에 따라 정식 등록된 명동 노점은 '거리 가게 운영 규정'에 따라 가격표시 의무지역에 있더라도 가격 표시제 단속 대상이 아니다.

지난해 가격 표시제가 도입될 때 구청은 올해 거리 가게 운영 규칙을 개정하겠다고 했지만, 당초 계획과 달리 현행법은 지금까지 그대로다.

중구청 관계자는 "정확히 언제 개정이 가능할지 시기를 딱 집기는 어렵지만, 현재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며 "그전까진 지금처럼 거리 가게 단체와 협의해 업자가 자발적으로 가격 표시제를 준수하도록 계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인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일부 가게에서 악질적으로 가격 미표기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다음 주 예정된 집중 점검 때 지하상가 점포들도 면밀히 확인해보겠다"고 밝혔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