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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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하다 예초기에 다치거나 벌에 쏘이거나 뱀에 물리거나 하면 응급치료 못 받고 조상님 묘 옆에 같이 누울 수 있습니다."

상당수 대학병원 응급실이 인력 부족 등으로 진료 역량이 크게 저하된 상황에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관심을 끈 글이다.

해당 글이 올라온 날 실제 벌초 중 벌에 쏘여 50대 남성이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했다.

2일 경남 합천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일 오전 9시 20분께 합천군 청덕면 삼학리 야산에서 친척 등과 조상 묘소 벌초를 하던 50대 남성 A씨가 벌에 쏘였다. 목덜미를 쏘인 그는 현장에서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목숨을 잃었다.

A씨 사인은 중증 알레르기 반응인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 쇼크인 것으로 전해졌지만 위급 상황에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국민들의 불안감은 높아만 가고 있다.

위급 상황이 발생했으나 119구급차를 타고 수십 곳의 병원에 연락해도 받아줄 응급실이 없어 애를 먹거나 급기야 사망하는 사건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KBS 보도에 따르면 두 살배기 여자아이가 열과 경련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경기도권 응급실 11곳으로부터 진료를 거부당해 결국 의식불명에 빠졌다.

당시 B양 어머니와 구급대원은 10여 분간 경기 서북권역 병원 6곳에 전화했지만 모두 환자를 받을 수 없다며 거부했다. 급한 대로 자택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향했으나 역시 진료를 거절당했다고 알려진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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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김종인 전 개혁신당 고문은 새벽에 이마가 찢어진 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직접 겪었다고 밝힌 데 이어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저희 아버님도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자리가 없어서 진료받지 못했고 결국 사망했다"고 전한 바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의 발표와 다르게 이미 많은 응급실은 정상적인 진료를 못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에서 의료공백 위기 상황을 두고 "비상 체제가 원활하게 가동하고 있다"고 답한 것에 대한 반박이다.

전의비에 따르면 1일 기준 전국 57개 대학병원 응급실 가운데 분만 불가능이 14개, 흉부대동맥수술 불가능이 16개, 영유아 장폐색시술 불가능이 24개였다.

전의비는 "(윤 대통령이) 추석 연휴 응급실 고비에 대해서는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이라 말한다"며 "추석을 기점으로 응급진료가 안 되는 질환이 더욱 증가하고 응급실을 닫는 대학병원이 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금도 건국대 충주병원, 순천향대 천안병원, 단국대병원, 국립중앙의료원, 세종충남대병원, 이대목동병원, 강원대병원, 여의도성모병원이 응급실을 일부 닫았거나 닫으려는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전의비는 "정치권은 의료위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해야 한다"면서 "의료 붕괴를 가져온 책임자를 처벌하고 의대 정원 증원을 중단하는 것이 사태를 진정시킬 유일한 대안"이라고 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의 응급실 상황을 두고 "어려움이 있지만 진료 유지는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같은 날 오전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응급실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묻는 말에 "문제는 응급실뿐 아니라 (응급실에서 이어지는) 배후 진료로, 솔직히 이 문제는 의료계의 집단행동 이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의료 개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걱정했던 노조(보건의료노조)의 집단행동도 협상이 대부분 타결돼 해결됐고, 급증하던 코로나19 환자도 감소 추세에 들어갔다"며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권역센터 같은 경우는 병상이 축소되고 전문의가 이탈하는 등 위험 요인이 있지만, 정부는 응급의료 체계 유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