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첫 전용서체 개발한 현대카드…'유앤아이' 20돌
기업이 브랜딩을 위해 전용 글씨체를 개발하는 건 이제는 흔한 일이 됐다. 네이버의 나눔서체 시리즈, 배달의민족의 한나체,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체 등 많은 기업은 전용 서체로 브랜드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

국내 최초로 기업 전용 글씨체를 만든 곳은 현대카드다. 현대카드는 2003년 ‘유앤아이(Youandi)’라는 서체를 선보였다. 당시만 해도 서체로 기업의 브랜드 정체성을 정립한다는 생각이 낯설었다. 현대카드는 국내 산업 전반에 기업 서체 개발 열풍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카드는 지난달 20일 유앤아이 개발 20주년을 맞아 ‘아워 타입페이스(우리의 서체)’라는 기념 책을 제작했다. 현대카드의 유앤아이는 신용카드업을 상징하는 신용카드 플레이트 모양을 모티프로 개발한 서체다. 현대카드는 지난 20년간 기업 이미지(CI)와 광고 등에 이 서체를 일관되게 활용하고 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현대카드라는 기업명을 드러내지 않아도 유앤아이 서체만으로 현대카드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카드업 시장의 후발주자였던 현대카드가 시장에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데는 전용 서체의 역할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현대카드는 2022년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고요의 바다’에 유일하게 유앤아이의 외부 사용을 허락했다. 시리즈가 진행되는 동안 현대카드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시청자가 현대카드의 서체를 알아차렸다는 후문이다.

현대카드는 유앤아이 서체를 진화시켰다. 유앤아이는 CI와 광고에 활용하는 목적이 컸기 때문에 제목과 영문 서체 위주로 개발됐다. 2012년에는 가독성과 사용성을 향상한 본문용 서체인 ‘유앤아이 모던’을 내놨다. 2021년에는 디지털 환경에 보다 다양하게 표현하고 활용될 수 있도록 가변 서체인 ‘유앤아이 뉴’를 개발했다. 일반적으로 서체는 한 번 개발되면 끝인 경우가 많은데 꾸준한 변화를 거치는 서체는 흔치 않다는 설명이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유앤아이와 같은 브랜드 자산에 대한 전 직원의 이해와 의식 수준을 더욱 높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아워 타입페이스에 실린 인터뷰에서 “지금은 유앤아이가 현대카드의 브랜드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 크지 않다”며 “구성원의 수준과 안목이 낮은데 최고경영자(CEO)와 디자이너 몇 명이 노력한다고 좋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 문화가 후진적이고 민도가 낮은 곳에서 이제부터 디자인과 브랜딩에 신경 쓴다고 한들 금방 좋아지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강도 높은 인식의 전환을 임직원에게 촉구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유앤아이는 국내 최초의 기업 전용 서체일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하는 서체”라며 “현대카드 디자인의 저력은 참신한 시도에서 그치지 않고 꾸준하게 지속하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