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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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리얼드로우, 플루언트, 인쇼츠 등 국내 유망 스타트업 7개사와 TBS, 세가세미 등 일본 대기업이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스타트업 지원기관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한국 스타트업의 가교 역할을 했다. 지에 구보타 TBS이노베이션파트너스 총괄디렉터는 “한국에는 일본보다 엔터테인먼트 분야 인재가 창업한 스타트업이 많다”며 “한국 스타트업과 일본 기업 간 사업 제휴가 활발하게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예찬 플루언트 대표는 “반다이남코, 쇼치쿠 등과 인공지능(AI) 기반 대화형 아바타 사업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래픽=이은현 기자
그래픽=이은현 기자

해외 대기업과 ‘윈윈’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협업이 진화하고 있다. 보통 스타트업은 대기업을 통해 기술 및 서비스 고도화, 매출 확대, 해외 진출 등을 노린다. 대기업은 스타트업과의 협력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다. 하지만 한계가 뚜렷했다. 대기업 중 상당수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나 사회 공헌 사업의 일환으로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추진하다 보니 보여주기식 프로그램이 대다수였다.

최근 이런 관행이 조금씩 바뀌는 분위기다. 특히 해외 대기업이 국내 스타트업과 함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적극적이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엑소시스템즈는 글로벌 제약사 로슈와 협업하고 있다. 희귀난치성 질환인 척수성 근육위축증 환자를 대상으로 헬스케어 제품을 개발 중이다. 이후만 엑소시스템즈 대표는 “세계적으로 신뢰도가 높은 로슈와의 협업은 해외 진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AI 기반 위조 상품 모니터링 솔루션업체 마크비전은 프랑스 명품 제품 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도움을 받아 해외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2022년 ‘LVMH 이노베이션 어워드’ 대상을 수상하고, 각종 스타트업 지원 혜택을 받았다. LVMH는 마크비전의 해외 최대 고객사이기도 하다. 슬립테크(수면 기술) 스타트업 에이슬립은 오픈AI와 신규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이동헌 에이슬립 대표는 “오픈AI의 AI 챗봇 ‘챗GPT’에 에이슬립의 수면 관리 기술을 접목할 계획”이라고 했다.

정부의 관련 지원 사업도 스타트업과 해외 대기업 간 협업 확대에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웹서비스(AWS), 지멘스, 인텔 등 해외 빅테크 기업 11곳이 참여하는 중소벤처기업부의 ‘글로벌 기업 협업 프로그램’이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스타트업은 2019년 60개에서 올해 305개로 크게 늘었다. 해당 지원 사업으로 인수합병(M&A) 12건 체결, 투자유치금 5000억원 돌파 등의 성과가 나왔다.

국내 대기업과의 협업도 한층 긴밀해졌다. 협력 첫 단계인 기술 검증(PoC)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양사의 이익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피자 프랜차이즈 스타트업 고피자는 지난 4월 GS리테일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편의점 GS25로 판매망을 늘리고 있다. 국내외 450여 개 매장을 운영하는 고피자는 GS25와의 협업으로 올해 안에 1200호점을 돌파할 계획이다. AI 스타트업 클리카, 프롬디, 네이션에이 등은 LG전자와 자사 AI 기술을 노트북 등에 적용하는 ‘온디바이스 AI 챌린지’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LG전자는 관련 솔루션을 신형 노트북 ‘그램’에 적용할 계획이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의 스타트업 대상 설문조사에서 ‘대·중견기업-스타트업 간 판로 연계’가 국내 창업 생태계 발전의 두 번째 과제(응답률 33.6%)로 꼽히기도 했다. 그만큼 단순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실제 성과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대기업 투자도 늘려야

대기업이 스타트업과 상생하기 위해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정 수준의 지분 투자가 있어야 진정성 있는 협업이 이뤄진다는 게 스타트업의 설명이다.

중기부의 ‘최근 5년간 벤처펀드 출자자 현황’에 따르면 올 상반기 결성된 신규 벤처투자펀드 중 민간 부문 출자액은 4조1830억원으로 전체 출자액의 82.0%에 달한다. 2022년(87.5%), 2023년(85.6%)보다 비중이 낮아졌다. 대기업이 ‘큰손’인 일반법인과 금융회사가 출자액을 줄였다는 의미다. 일반법인의 상반기 출자액은 총 1조241억원으로 전년보다 12.3% 감소했다. 1조원은 겨우 넘었지만 2년 전(1조7709억원)과 비교하면 7000억원가량(42.2%) 줄었다. 전체 벤처펀드 출자 비중도 지난해 24.8%에서 올해 20.1%로 낮아졌다. 최근 5년간 가장 낮다. 금융사(산업은행 제외)도 마찬가지다. 상반기 출자액은 1조4773억원으로 전년보다 0.9% 줄고 2년 전(2조6732억원)에 비해선 반토막 났다.

국내 대기업 투자가 늘지 못한 건 관련 규제 영향이 크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정부가 2021년 대기업 일반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설립을 허용하면서 국내 CVC 설립이 늘긴 했다. 하지만 외부 자금의 출자 비중이 펀드당 40%로 제한됐다. 대기업이 외부 자금을 한도 없이 끌어오면 금융사 역할까지 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금산분리 규제를 우회하는 통로로 CVC를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CVC의 해외 투자를 총자산의 20% 이하로 제한한 것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대기업 최대주주가 회삿돈을 해외로 빼돌릴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였다. 한 대기업 CVC 심사역은 “일반 VC가 총자산의 60%까지 해외에 투자할 수 있는 것과 대조적인 역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알고 있다. 중기부는 지난해 일반지주회사의 CVC가 결성한 펀드의 외부 자금 출자 한도를 기존 40%에서 50%로 상향하고, CVC 해외 투자 한도는 20%에서 30%로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김주완/고은이 기자 kjwan@hankyung.com